실적단가는 거래가격이라 예가 확 낮춰
품셈은 인력ㆍ장비 반영하지만 원가 논란
발주자ㆍ계약자 간의 문제로 맡겨야 해결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데다 최저가낙찰제 등으로 인해 국내시장이 무척 어려워져 있다. 최근에는 ‘삽질경제’니 ‘토건족’ 등 폄하성 발언이 잇달아 나오면서 착공 중이거나 계획된 사업의 예산마저 삭감해 더 춥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상장된 건설회사의 61%가 수익으로 이자보상비도 매우지 못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건설이 남는 장사기 때문에 업체가 살아 있는 게 증거’라 주장한다.

올해 국토해양부 3대 과제 중에 서민생활안정 실천계획에 건설기능인력에 관한 내용이 있다.
건설현장에 내국인 고용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 기능공의 수입 안정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투입원가에 해당하는 임금을 높여 현장으로 유인하고 시공자들이 불법 외국근로자 대체를 위해 마구잡이식 저가 입찰은 하지 못하도록 하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내국인 인력 투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산가격을 높여야 한다. 입찰가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정가격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예정가격을 높이기 위해 입찰가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건설업체들이고, 후자는 공공발주기관들이다.

건설업체들은 예정가격이 낮아지는 주원인 중 하나로 실적단가를 지목하고 있다. 공공기관들은 낮은 낙찰률에 있다고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업체들은 실적단가제도를 폐지하고 품셈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품셈에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에 실적단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품셈과 실적단가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품셈은 투입요소별 원가산정 기준인데 반해 실적단가는 거래단가, 즉 기성제품 구입가격 기준이라는 차이다. 시작과 끝이 동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먼저 품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자. 품셈의 기준이 되는 투입요소는 인력과 자재, 그리고 장비 등 3요소가 핵심이다. 자재는 완성된 기성제품이기 때문에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에 대한 논란이 없다. 인력과 장비는 시공계획 및 방법, 숙련도 등에 따라 큰 편차가 있다.

동일한 시공계획과 방법, 숙련도라도 시공물량과 작업의 집중도에 따라 편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발행하는 품셈책자는 이런 편차를 고려해서 누적된 평균값을 생산성 데이터로 만들어 낸 산물이다. 품셈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공공공사와 같이 원가산정방식을 강제화하지 않는다.

다음은 실적단가의 본질이다. 거래가격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건 국내와 차이가 없다. 다만 국내와 같이 개별 공종(예, 철근이나 콘크리트 등) 단가가 아닌 대표 공종이나 상품별 부재(예, 슬라브 면적당 혹은 교량 형식별 길이 당 등) 단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투입원가는 생산자인 시공자가 결정하는 게 당연하다. 자동차의 투입원가는 생산자만이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문제는 투입원가를 결정하는 핵심인 품셈에 대한 민간의 기준이 없다. 생산자가 개발 및 유지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들의 선동적 주장에 의해 구매자인 공공기관이 품셈을 관리하는 모습으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꼴(?)’이라는 주장에 밀려 국내 품셈은 주인과 길을 동시에 잃어버렸다.

필자가 경험한 건설현장에서 3년간 지속적으로 측정한 결과로는 철근, 콘크리트 및 거푸집의 생산성이 계절과 작업량에 따라 평균값과 5배 이상 차이가 난 경우가 많았다. 당시 경험적 판단으로 내린 결론은 여러 현장을 조사해 누적된 값을 생산성 평균 데이터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공종과 상품별로 상당한 조사인력이 수년간 투입돼야 누적 평균값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공공기관도 독자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임시방편이긴 했지만 외국회사 품셈에다 국내 주요 직종별 생산성을 상대비교 한 후 생산성을 지수화 시켜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필자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본질적인 접근을 않고서는 실적단가와 품셈 논란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품셈과 실적단가 모두가 신뢰성이 부족하다. 선진국에서는 품셈 논란이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이유는 너무 명쾌하다. 발주기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거래당사자간의 문제, 즉 발주자와 계약자간의 문제로 인식하지, 외부 주장에 휘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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