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힘차게 돌아가야 할 물레방아의 물레바퀴가 멈추었다. 물레방앗간에서 벌어지는 마님과 머슴의 정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것을 쌩쌩 돌아가는 물레바퀴에 비유하려던 박 감독의 예술적이고도 창의적인 계획에 찬물이 끼얹어져진 것이다. 박 감독의 창의적이고도 예술인 영감에 찬물을 끼얹진 건 에로 비디오 스텝들이다.

“아! 무슨 야로가 있다고 그래, 야로가! 속고만 살았어?”
장비를 걷고 있는 조명감독에게 박 감독이 던진 말이다.
“이상하잖아! 대본에도 없는 웬 시대물을 찍고 난리야?”

반쯤 벗겨진 한복 차림의 유미는 이럴 때 정말 난감하다. 그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박 감독을 바라볼 뿐이다.

“너 왕가위 감독 알아?”
또 시작이다. 박 감독은 종종 자신을 유수의 영화감독과 비교하곤 하는데 오늘은 왕가위가 선택된 것이다.
“왕가위 감독도 대본없이 생각나는 대로 찍어.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그게 다 그렇게 찍은 거야. 영감! 필!”

 
나름대로 설득이라고 한 박 감독의 말에 조명감독은 설득이 되기는커녕 기가 막혔다.
“왕가위? 떡 비디오나 찍는 주제에 왕가위? 왕가위가 씨발 자다가 뻘떡 일어나겠다! 그리고, 왕가위도 스텝들 일당 안 준대! 왕가위가 가위질하는 소릴 해도 유분수지! 돈 준다는 약속 벌써 몇 번째 어기는 거냐구!”

“원래 이 바닥 돈이란 게 좀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는 거 아냐? 그거 하나 이해 못해?”
“못해, 씨발! 누군 이 장사 한두 번 하나? 야, 걷어! 철수해!”

단단히 벼른 조명 감독의 기세에 밀린 박 감독은 유미에게 괜히 화풀이다.
“유미, 정말 무책임하다! 주연 여배우가 이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거야? 허리우드에선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야!”

중국 음식점.
미국 허리우드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한국 에로 비디오 업계의 현실을 개탄하던 박 감독은 짜장면 두 개를 시키면서 기어이 군만두를 서비스로 받아냈다.

입안 가득 짜장면 넣고 먹성 좋게 그것을 먹던 박 감독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유미의 시선이 무안했던지 유미 앞으로 군만두 하나를 밀었다.
“먹어.”

군만두나 먹으려고 이곳까지 온 유미가 아니다.
“저… 감독님.”
유미가 어렵게 입을 떼는데 박 감독이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젓가락을 탕- 하고 탁자에 내려치듯 놓았다.

“아, 나 참! 오늘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새끼들 말이야 지금 찍고 있는 이거 대박만 나봐! 그때도 지들이 날 이렇게 무시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옛날에 극장 영화 찍었던 사람이야!”
유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기에 박 감독이 입을 막으려 선수를 친 것이다.

“어려우신 거 알지만, 우선 백만 원만이라도 안 될까요?”
박 감독은 실망했다는 듯 허탈하게 유미를 바라보았다.
“백만 원? 백만 원?! 유미, 백만 원 때문에 나랑 작품하는 거야? 유미까지 정말 왜 이래? 유미는 스타가 될 사람이야! 날 그렇게 못 믿어?”

“정말 급하게 써야 할 데가 있어서 그래요.”
“급한 거 뭐? 급한 게 뭔데?”

유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박 감독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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