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 한국기원은 중요한 결정을 하나 했다. 중국 국적의 여류 프로기사(棋士)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 부부가 한국에서 기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천안문 사태로 중국을 떠나야 했던 그녀는 처음엔 일본 여류바둑계를 노크했다. 그러나 일본 여류기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 여류들이 워낙 막강한 실력을 가진 그녀가 상금을 독식(獨食)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루이는 한국에서 활동을 하자마자, 2000년 동아일보 주최 제43기 국수전에서 당시 최강이던 조훈현(曺薰鉉) 9단을 꺾고 타이틀을 따냈으며, 여류기전에서는 전관왕(全冠王)을 6차례 차지하는 등 2011년 말까지 27회나 우승할 만큼 실력자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열세를 보였던 한국 여자바둑계는 루이를 맞아들인 이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간 세계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하던 한국 여자 선수들은 루이의 견인(牽引)에 힘입어 10차례(개인전 6회, 단체전 4회)나 타이틀을 획득하는 급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과거 남자 기사들에게 크게 밀리던 여류들은 루이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실력이 일취월장, 이제는 남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승패를 다툴 정도가 되었다. 그 반대로 일본 여자바둑은 한 ? 중(韓中)에 비해 침체에 빠져 있다.

최근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계를 보면서 루이를 떠올린다. 지난 6월10일 일본여자프로골프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국에서 날아온 김효주(17·대원외고 2년)라는 10대 아마추어 소녀가 효고(兵庫)현 롯코(六甲) 국제골프장(파72·6511야드)에서 열린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대회(총상금 1억 엔)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JLPGA 사상 최연소(16세 332일), 18홀 최저타(11언더파), 72홀 타이(17언더파)라는 ‘대기록’을 세운 끝의 우승이었다.

김효주의 우승이 있은 후, JLPGA 홈페이지에 올라온 일본 네티즌들의 댓글을 몇 개 소개한다.
“또 한국인에게 당했구나. 게다가 이번엔 아마추어.” “아마추어가 대단하구나. 한국 선수층이 두텁다는 증거겠지. 일본은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한국은 싫지만 우승한 아마추어 여고생은 대단한 인재다. 오늘의 11버디, 노보기 61타는 놀라운 스코어다.”

한국 선수들은 5월6일(안선주), 5월13일(박인비), 5월20일(이지희)의 3연승을 비롯, 올 시즌 14개 대회에서 7승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스포츠호치>신문은 5월21일자 보도를 통해 “한국세가 3개 대회 연속 승리를 가져간 것은 일본에 있어서는 2009년 이래 처음 맞는 ‘굴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5월27일 중국의 펑샨샨 이후 6월3일 전미정, 6월10일 김효주 등 외국세가 또다시 3연승을 올렸다. 이런 추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를 지경이다. 특히 상금 랭킹에서 한국세는 압도적이다. 상위랭커 6명 중 4위 1명만 일본 선수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선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나, 일본 선수들은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술(前述)한 루이의 경우를 교훈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19세기 말, 개항(開港)을 선택한 일본은 세계 일류국가가 되었고, 쇄국(鎖國)한 조선은 패망의 길을 걸었다. 개방한 한국 여자바둑은 크게 발전했고, 빗장을 걸어 닫은 일본 여자바둑은 쇠퇴했다.

다행히 일본 여자골프는 ‘개방’을 택하고 있다. 매우 희망적인 현상이다. 현직 프로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골프 꿈나무들이 일본 골프계를 휘젓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극복하기 위해 이 시간에도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당장은 괴롭겠지만, 이러한 개방정책이 높게 평가받고 보상받을 날이 멀지 않아 도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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