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일번지 나이트클럽.
탁자엔 잃어버렸던 우나의 다이어리가 펼쳐져 있다.

“저번 달 7일부터 오늘까지 딱 서른 개 찍었네. 확인해 봐, 맞지?”
하마터면 못 받을 뻔 했던 출연료이기에 우나는 공돈이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넌 시방이 웃음이 나오냐?”
지배인이 우나의 웃는 얼굴에 퉁을 놓았다.

“너, 나운아 알지? 나운아가 아까 여그 와서 니 반값에 출연한다고 혀고 갔어. 어쩌그 계속 웃어 볼텨?”
우나의 심장에서 쨍그랑하고 밥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업소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 ‘싼 맛’이기 때문이다. 업소 사장에게 ‘나우나’와 ‘나운아’가 있는데 누굴 쓸까요? 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0.1초 안에 대답한다. 싼 놈.

“그래서! 그래서 나운아 걔 쓰기로 한 거야?”
“아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나가 사장한테 그랬지. 나운아 걔가 찾아오기 전부터 우나 니가 가게 사정 어려운 거 알고 케라 50%를 자진 반납했다고 말이여.”

“뭐? 내가 언제!”
“음맘마, 야 좀 봐! 그럼 그냥 나운아 쓸까?!”
우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 아니! 내가 얘긴 안했지만, 앞으로 하려고 했지. 그렇지 않아도 케라 나오면 형한테 양복 한 벌 쏘려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 돈 그냥 형이 가져.”

나운아가 찾아와 우나가 받는 출연료의 50%에 출연하겠다고 했다는 것은 지배인의 거짓말이다. 그제는 하추나가 찾아 왔다며 하춘하에게 삥을 뜯어냈고, 어제는 조영필이 찾아 왔다며 주용필에게 뽀찌를 뜯어냈다. 오늘은 우나가 당했을 뿐이다. 출연자들은 그것을 슈킹이라고 불렀고 지배인은 고통분담이라 했다.
영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텅 빈 객석

우나가 연습하는 노래는 나훈아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이다.
“간간이 너를 그리워 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때로는 너를 미워도 하지만, 가끔은 눈시울 젖기도 하지. 어쩌면 지금 어딘가 혼자서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몰라. 초저녁 작게 빛나는 저 별을 나처럼 보면서 울지도 몰라.”

오늘 밤에도 취객의 조롱을 받아가며 몇 번이나 불러야 할지 모르는 이 노래. 그래도 우나는 이 노래가 좋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자면 자신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줄 짝이 어디엔가 있는 것 같았다.

“으따! 고것이 아니지잉. 나훈아면 나훈아으 뽀인뜨를 잡아아제. 고로코롬 밋밋하게 불러 불면 고것 남진인지 나훈아인지 술 먹고 취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긋냐?”“형! 이 거는 나훈아도 나훈아처럼 안 불러. 그냥 이렇게 부르다 끝에 가서 나훈아처럼 씩- 한번 웃으면서 끝내는 거야.”

이 세상에 나훈아도 나훈아처럼 안 부르는 노래는 없다.
우나는 단지 오늘만큼은 자신의 기분대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다. 게다가 지배인에게 고통을 분담한 날이니 오늘 하루쯤은 지배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인연이라는 만남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이별도 있지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면 그 인연 또 한 번 너였음 좋겠어.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내 삶의 전부 눈물로 채워도 널 기다리면서 살는지 몰라.”
우나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그녀를 생각하며, 이 노래가 현실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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