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나라 TV드라마 출연 탤런트들이 촬영 현장에서 혹사당한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예슬인가 하는 탤런트가 촬영 스케줄이 살인적이라며 촬영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가버려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 여자 탤런트는 30시간 내내 눈을 뜨고 촬영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하루 촬영시간을 최소 휴식시간 6시간을 제외한 18시간으로 줄여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인데, 18시간도 그렇게 짧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만큼은 아니어도 업무량이 살인적이기는 마찬가지인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은 이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유수의 건자재 업체에 취직한 선배 아들이 있습니다. 선배 말에 따르면 출근 첫날부터 야근을 하더니 거의 매일 밤 12시 전후에 집에 들어오더랍니다. “그렇게 야근을 시키면 저녁에 밥은 제대로 먹냐, 야식비는 주더냐”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야식비는 무슨 야식비요, 사무실 캐비닛에 컵라면만 잔뜩 들어있어요”라고 말하더랍니다.
재벌기업에서 해외영업을 하는 또 다른 선배 아들은 해외출장이 잦습니다. 한 번 비행기를 타면 일주일이나 보름씩 돌아다니다 귀국하는 시각이 아침이면 바로 사무실로 나가 출장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밤에 도착하면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이를 잠깐 보고 눈 붙인 후 쉴 틈 없이 출근해서 출장보고서를 쓰고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답니다.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상관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데, 그러다 보면 3주 연속 휴일 없이 일하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눈치가 보여서 대체휴일을 내기도 쉽지 않답니다.
국내 2~3위를 다투는 재벌계열 보험회사 고위 임원인 친구가 있습니다. 강남의 큰 아파트에 살면서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가 있고, 주말이면 이 차 뒷자리에 앉아 골프를 치러가는 ‘잘 나가는’ 친구입니다.
제가 물어봤지요. “왜 재벌회사들은 젊은 직원들을 그렇게 혹사시키냐, 니네 회사도 그러냐. 젊은이들이 무슨 삶의 재미가 있겠느냐”고요. 이 친구 대답이, “나도 아직 그렇게 산다. 새벽 5시 반에 깨서 6시 50분이면 사무실 내 자리에 앉는다. 신문 훑어보고, 업무자료 후딱 읽어보고 간부회의 주재하고, 그러면 아침시간 다 지나간다.
오후는 좀 한가하지만 그렇다고 놀 수는 없지. 좀 더 오래 월급 받고 살려면 뭐 하는 척은 해야지. 저녁에는 또 이런저런 약속 자리 갔다가 집에 오면 보통 9시야. 그것보다 늦을 때도 많고. 이 짓하며 산 지가 30년 넘었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제 젊은 날도 만만치 않은 삶이었네요. 초년병 사회부기자 때는 4일에 한 번 야근을 했는데, 아침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서울 시내 경찰서를 밤새 돌아다니는 그런 야근이었습니다. 17~18년쯤 지나 부장이 됐을 때도 일주일에 한번은 밤을 새워야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지긋지긋하기만 합니다. 물론 직군에 따라 저보다 더 심하게 야근하는 선후배도 많았습니다.
월급 주는 사람들, 즉 세상의 갑들은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보답 받는다”라며 세상의 을들을 다그치지만, 또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가 자신을 갑으로 만들어 주었겠지만, 열심히 일해도 갑이 되기는 갈수록 어려운 요즘에,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나 제 친구는 그나마 운이 좋아 아직 일하면서 월급 받고 살지만 휴일 없이 일하고 또 일하는 세상의 보통 아들과 딸들을 보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일 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누가 만들어줄 수 없는지, 헛된 생각을 품어봅니다. /정숭호 코스카저널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