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제가 왜 다이어리를 돌려드린지 아세요?”

눈물을 훔친 유미가 우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슬펐어요. 우나 씨 다이어리에서 어머니 사진하고 양복할인권을 봤는데 슬펐어요. 이 사람은 가족도 있고 또 싸구려 양복 할인권으로 옷을 해 입을 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별로 슬플 것 같지 않은데, 슬펐어요. 그래서 돌려드린 거예요.”

우나는 유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쉽게 꺼내 놓을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배우라고 했죠? 무슨 배우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하지 않냐니? 우나는 한 천 번쯤 생각했다. 얼굴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단역배우일까? 아니면 자신에겐 생소한 뮤지컬 배우? 어쩌면 순수함을 잃지 않은 가난한 연극배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괜히 유미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좋다가도 그녀가 자신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람 같아 입맛이 씁쓸해지기도 했다.

“저, 비디오 배우예요. 사람들이 그러죠. 에로 배우라고.”
우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해변의 여인이 에로 배우라니!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엔 딸꾹질 안 하시네요. 안 놀라셨어요?”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다. 너무 놀라 숨조차 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놀라긴요. 전 나훈아 모창가수에요. 배우로 따지면 에로배우랑 비슷한 거죠. 안 그래요?”
유미는 이런 우나가 좋았다. 우나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옷에 묻은 립스틱 자국 없애는 거, 딸꾹질 멈추게 하는 거, 파마 오래가게 하는 거…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물으셨죠?”
우나가 가만히 유미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주부가 되는 거, 그게 제 꿈이거든요. 그래서 공부한 거예요. 우나 씨도 꿈 같은 거 있어요?”
“꿈이라면… 제 이름으로 판 내는 거, 시골에 있는 엄마 모시는 거, 그러려면 장가가는 거… 그런 거죠 뭐.”

우나는 수줍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럼 카카오와 칠리를 드세요. 그럼 좋은 사람을 만난대요.”
카카오와 칠리를 먹으면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말에 우나가 고개를 들었고, 매듭을 짓듯 유미가 말했다.
“나처럼요.”

유미는 잔을 들어 우나에게 향하며 미소지었다.
지금까지 술을 마시지 않고 용케도 버텨 왔던 우나는 잔을 들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잔을 들었다.

건배. 건배는 했지만 우나는 유미가 술을 마시는 틈을 타 잔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미는 술을 마시는 대신 여전히 우나만을 빤히 바라볼 뿐이다. 지금까지 우나가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을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우나는 이 잔마저 외면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위로가 거짓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했다. 이 세상엔 거짓말이나 하는 3류 모창 가수를 달가워할 사람은 없으니까.

우나는 유미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호흡을 하고 단숨에 마셨다. 그런데 그 잔을 내려놓기도 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고요해 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둘러보니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온통 물에 비춰진 듯 어울거리고 있었다.  왜 이러지? 우나는 정신을 차리려 도리짓을 해보려 했으나 이내 고꾸라지듯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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