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백미러로 뒷자리를 힐끔거리던 택시기사는 아무래도 유미가 아까운 눈치였다.
“애인이 약주 많이 하셨나 봐요?”
“예?… 예.”
유미는 애인이란 말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애인이 나훈아랑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 안 들어 보셨어요?”
소주 한 잔에 정신을 잃고 유미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던 우나가 ‘나훈아’란 말에 부스스 정신을 차렸다.

“아저씨, 아저씨도 나 비웃는 거야? 내가 나훈아 흉내나 낸다고 날 우습게 보는 거냐고!”
소주 한 잔에 우나는 혀까지 꼬여 있었다.
“우나씨, 그게 아니라요.”
“우나가 아니라 나훈아라니까요! 본명은 최홍기, 1947년 2월 11일생,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졸업. 1966년 천릿길로 데뷔, 종교는 천주교, 특기는 서예. 나우나가 아니라 나훈아라고요!”

 

나훈아에 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쏟아 놓을 것 같던 우나의 기세는 술기운에 무너졌다. 우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 했으나 술기운이 그의 머리를 유미의 어깨로 꺾어 버린 것이다.
술주정에도 나훈아가 들어가 있는 사람. 술주정도 마음껏 못하는 사람.
유미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우나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우나가 눈을 뜬 것은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때문이었다.
그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고 뒤척이던 우나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나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를 확인하려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유미가 상을 들고 들어왔다.

“일어났어요?”
우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불로 몸을 가렸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유미는 대답 대신 상 위에 놓인 냄비 뚜껑을 열였다.
“라면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때 우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너 여자 생겼냐? 외박을 다하고.”
수화기 속 근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번에 너 찾아 온 여자 있지? 배우라던 그 여자. 내가 그 여자가 무슨 배운지 알아냈잖아. 배우긴 배우더라.” DVD 대여점 한답시고 하루 종일 야동이나 기웃거리는 근대의 눈에 유미가 포착된 것이다.

“얼른 들어와 새끼야. 형아가 죽이는 거 보여 줄 테니. 이름이 유미란다! 유미!”
근대의 말이 다 마치기도 전에 우나는 전화를 끊었다.
“누구…?”

우나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본 유미가 물었으나 우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급하게 라면을 먹었다. 차마 고개를 들고 유미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굴을 숙이고 라면을 먹고 있는데, 뜬금없게도 김치가 놓인 접시 한가운데에 새하얀 달걀이 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신김치에 넣으면 신맛이 없어져요. 계란도 먹을 수 있고요.”

우나는 혼란스러웠다. 평범한 주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 에로 비디오 배우.
우나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이름이… 유미 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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