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미안해요, 저 때문에 친구분한테 오해받으셔서.”
찻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유미는 우나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그 미안하단 말이 우나의 가슴 어디쯤을 저리게 했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오해를 한 사람이지 오해를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미는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우나는 알고 있다. 힘없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힘이 없는 만큼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어젯밤, 우나씨를 왜 우리 집으로 데려 온 줄 아세요?”
유미는 우나가 뭐라 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전 재미있는 일이 없는 여자예요. 그런데 그쪽을 만나면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만난 첫째 날도 그랬고, 그제도 그리고 어제도 우나씨를 만나면 즐거웠어요. 우나씬 달랐어요. 보통 사람하고.”

유미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우나를 바라보더니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물건을 받아 본 건 그쪽이 처음이에요.”
자신이 준 진심 어린 물건이라니? 우나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그녀에게 준 것이라곤 낡아 빠져 잘 펴지지도 않는 우산이 전부였다.

“우산…이요?”
“그래서 술 마시자고 한 거예요. 같이 있고 싶어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 준 사람. 살이 삐쳐 나올 정도로 낡은 우산이었지만 유미는 그것에서 우나의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우나는 그런 유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은 유미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이미테이션 가수 나우나가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인 정현철로 비춰지길 바랐다. 유미에게 진심이 담긴 그 무엇을 준 사람이 우나가 처음이었던 것처럼 우나에게 같이 있고 싶다고 한 사람이 유미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우나는 포장마차에서 유미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닌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시나마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 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나에게 허리 숙였다.

“고맙습니다. 잊지 못할 거에요.”
고맙다니! 잊지 못할 거라니! 우나의 달콤한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한 발 두 발 멀어지는 유미의 뒷모습을 보며 우나는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그 소리에 잠시 멈추었던 유미가 돌아보았다.
“평생 재미있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런데 절 만나면 재미있어서 좋으셨다고 하셨죠? 그럼… 제가 정말 재미있는 곳에 한 번 데려가 드릴까요?”

유미는 흔들렸다. 지난 밤, 우나를 떠나야 한다고,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흔들렸다. 사랑 따위의 사치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라도 자신의 지친 인생을 우나에게 기대고 싶었을 뿐이다.

버스 안
긴장이 풀린 탓인지 유미는 우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그런 유미를 바라보는 우나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해변의 여인’이라 착각할 만큼 청순하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의 다이어리를 훔친 여자. 에로 비디오의 여배우면서 평범한 주부를 꿈꾸는 여자. 우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우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미는 여전히 우나의 어깨에서 잠들어 있었고 그들을 실은 버스는 덜컹덜컹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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