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제(日帝) 강점기 때,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전범(戰犯)기업인 일본 미쓰비시(三菱ㆍ삼릉)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징용피해자와 유족들이 제기한 불법행위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이 ‘위헌’이라 결정한 데 이어, 이번에 대법원이 국가 간의 조약체결을 이유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제약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국인 피해자가 해당 일본 기업에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지금까지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韓日)협정에 의거, 민간인 청구권은 소멸된 것으로 간주돼 왔다. 과거 일본 대법원도 같은 이유로 한국인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나 미쓰비시 등 해당 일본 기업은 민간인의 청구권은 소멸된 것이라는 종래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이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2011년 8월7일 오후 8시에 방영된 KBS 스페셜 ‘군함도(軍艦島)’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군함도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시(市) 앞바다에 떠 있는 하다시마(端島ㆍ단도)를 이르는데, 섬 모양이 군함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프로는 조선(朝鮮)의 백성들이 강제로 끌려가 석탄을 캐면서 매 맞고 죽어간 섬의 이야기다.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백성들이 어떤 고초를 겪는지 이 프로는 생생하게 보여 줬다. 그런 생지옥에서 살아나온 노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송곳처럼 필자의 뼛속을 후벼 파고 들었다.

일제는 중일(中日)전쟁 이후, 급증하는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 백성들까지 끌어가는 국민총동원령을 발동했다. 이는 특히 전쟁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일본 재벌기업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군함도는 이번에 문제가 된 미쓰비시중공업의 관할이었다.

군함도에 끌려온 조선인 광부들은 하루 14시간씩 중노동을 당하고,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지하실에서 잤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탈출을 감행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시 잡혀와 혹독한 사형(私刑)을 당하다 죽어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하갱도에서 불이 났다. 탄광 측은 사람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불이 더 번지지 않도록 갱도를 진흙으로 막아 산소를 차단했다. 그 바람에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 10명은 비참한 모습으로 숨졌다. 미쓰비시는 무덤 대신, 섬 숲 속에 조그마한 탑 하나를 세웠다가 탄광을 폐쇄할 때, 탑 입구마저 없애버렸다.

더 기가 막힐 일은 미쓰비시의 요청을 받은 일본 정부가 폐허화한 이 섬을 포함한 나가사키 후쿠오카 일대 탄광지대를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했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참회하고 잘못을 빌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곳이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므로 자랑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 발상이 놀랍다 못해 섬뜩할 지경이다. 군함도는 한 가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북해도 탄광, 남양군도(南洋群島)의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의 원혼이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있다.

겨우 목숨을 구해 돌아왔지만, 죽은 것만도 못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디 한둘인가. 주한(駐韓)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 집회를 갖는 할머니들을 보라. 그래도 일본은 꿈쩍도 않고 있다. 우리가 잊어서 아니 될 일은 과거만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웃 나라에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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