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반가워요. 패, 튀김이에요.”
패튀김은 마치 자신이 진짜 패티김인 것처럼 유미에게 인사를 건넸다. 패튀김뿐만이 아니다. 조영필, 너후나, 송대간, 조용남, 하추나…. 누군가와 비슷한 그러나 그 누군가에 한 끝 정도 모자란 사람들이 유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나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며 유미를 데리고 온 곳은 이미테이션 가수들의 모임인 ‘거울회’였다.
“우나야, 이름이 뭐고? 제수씨 몸무게는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것나?”
농담이라고 던진 너후나의 말에 우나는 얼굴이 붉어질 만큼 난처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름은….”
“정숙이에요. 손ㆍ정ㆍ숙”

유미는 우나의 말을 자르며 자신의 이름을 손정숙이라고 했다.
손ㆍ정ㆍ숙. 유미가 아니라 손정숙이라고 했다. 아마 손정숙이라는 이름이 본명이리라. 자신의 진짜 이름이 나우나가 아닌 정현철인 것처럼.

 
그런데 왜 이 여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힌 것일까? 우나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커다란 종이 뎅- 하고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울림이 멈추기도 전 너후나가 속내를 드러냈다.

“니, 정숙 씨를 봐서라도 내캉 앨범내야 한데이! 알긋나?”
“앨범이요?”
‘앨범’이란 말에 유미의 호기심이 동한 듯했다.
“하모요! 젊어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안하겠습니꺼?”

유미는 더욱 궁금해졌다는 듯 너후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앨범 낼 기회가 있어가 우나한테 코러스 좀 부탁했더니, 이미지 관리한다꼬 싫다 카네요. 까놓고 이바구해서 지가 관리할 이미지가 또 어데 있다꼬! 정숙 씨 지가 공짜로 해달라는 거 아입니데이.”
“오빠, 그거 내가 해 준다니까.”

생뚱맞게도 하추나가 끼어들자 나름 진지하게 사업 이야기를 하던 너후나가 김이 팍 샜는지 짜증을 냈다.

“닌 좀 낄데 끼라 마! 사장이 따블 나훈아 아니면 죽어도 안 된다 카는데 하추나가 어디서 혓바닥을 날름 거리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너후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미스 손, 우습습니꺼?”
“예?”
“우리가 우습냐 이말입니더?”
솔직히 우스웠다. 그렇다고 우습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볼 때는 우나나 나나, 여기에 있는 모두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정숙 씨는 우리를 절대 우습게 보면 안 됩니더.”

너후나의 열변이 이어졌다.
“내가 딸이 하나 있는데예, 내 나훈아 흉내 내서 대학까지 가르쳤습니더. 그런데, 가! 내를 절대로 챙피하게 생각하지 안아예. 와! 노력하니까! 나훈아가 자기 노래 한 번 부르면 우린 백 번, 천 번 부르니까! 나훈아 보고 내 따라하라면 아마 못 할기다. 그리고 이 직업, 사명감 없으면 못하는 거 알아요? 시골 노친네들, 서울도 경노당 다니는 노인들이 언제 나훈아 보고 조용필 보고 죽겠습니꺼? 다, 우리가 있으니까네 한 번 보고 그러는 기지. 안 그래요, 미스 손?”

유미는 이번엔 웃음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엔 사과와 존경이 배어 있었다.
“거울회를 위하여 건배.”

너후나가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했고, 모두가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우나는 사이다 잔으로 유미와 건배를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얼굴은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얼굴 중 가장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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