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예보에 없던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를 더해 갔고, 우나와 유미는 비를 피하려 놀이동산 매표소의 처마 밑으로 달려갔다. 하늘을 보니 비는 좀처럼 그칠 기세가 아니어서 우나가 난감해하고 있는데 유미가 백에서 우산을 꺼냈다. 예전 포장마차에서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우나가 유미에게 준 낡고 허름한 그 우산을.

‘왜일까? 왜 유미는 비가 온다는 예보도 없었는데 우산을 가져온 것일까? 혹시 이 여자는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하필 이렇게 볼품없는 우산을 가지고 다닌단 말인가? 보통의 여자라면 제대로 된 우산 하나쯤은 있을 텐데…. 정말 이 우산이 이 여자에겐 특별한 것인 걸까?’
우나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유미가 뻑뻑해서 잘 펴지지도 않는 우산을 폈다.

“주세요.”
우나가 빼앗듯 우산을 건네받아 그녀의 머리 위로 씌워 주는데 유미가 마른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우나가 유미의 안색을 살펴보았는데, 그녀의 얼굴은 내리는 비에 모든 핏기가 쓸려 내려간 듯 창백했다.
“피곤해 보여요.”

정말 그래 보였다. 유미는 서 있을 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미가 둘러보니 놀이동산을 북적이게 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 이곳엔 자신과 우나 둘만 남겨진 것 같았다.

“오늘도 비가 오네요.”
‘오늘도’라니? 기껏해야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인데 ‘오늘도’라니. 우나는 그 ‘오늘도’란 말이 자신과 유미를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이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만날 때 비 온 게 이번이 몇 번째인 줄 아세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포장마차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비가 내렸고, 유미가 자신을 찾아와 카페를 갔을 때도 소나기가 내렸었다.
“세 번째예요.”

유미는 세 번째란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우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런 얘기 들어 본 적 있으세요? 우산을 세 번 같이 쓰면 결혼한다는 말.”

우나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우산을 세 번 같이 쓰면 결혼을 한다는 말을 하는 유미의 눈에서 맺히고 있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도 들은 얘기예요.”

 

우나가 당황한 걸 눈치 챘는지 유미가 얼버무렸다. 그리고 떨어지려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제 꿈이 뭔 줄 아세요?”
제 꿈이 뭔 줄 아냐고 묻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고 공허하게 들렸는지 우나는 그저 유미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는 거예요. 그냥 평범하게…. 쑥이나 커피찌꺼기로 냉장고 냄새를 없애고, 상한 우유로 가구를 닦으며 남편을 기다리고…. 그렇게 사는 거요. 그게 제 꿈이에요.”우나는 무슨 말이든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유미의 스산함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기어이 유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왜…. 왜 그러세요?”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라는 듯 우나가 유미를 바라보는데, 유미의 코에서 주르르 코피가 흘렀다.
“저…. 정숙 씨!”
우나의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가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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