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온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음식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래서 한국에서 식(食)재료를 수입해 팔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나라는 없어져도 민족은 살아남고, 민족은 사라져도 언어와 음식은 살아남는다.” 필자가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맛집’을 연재할 때 들은 이야기다. 음식과 언어의 생명이 그만큼 길다는 얘기다. 좋은 예가 동유럽국가 헝가리(Hungary)다. 헝가리는 훈(Hun)족의 한 갈래인 마자르(Mazyar)족이 세운 국가다.

훈이란 서양에서 북아시아 유목민인 흉노(匈奴)를 일컫던 말이다. 마자르족은 어순(語順)이 우리와 같고, 성(姓)을 이름 앞에 쓴다. 그리고 약간 변형은 됐지만 아직도 된장국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와 뿌리가 같은 북아시아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증거다.

인간은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다섯 살 때까지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의 맛이 대뇌 속에 각인(刻印)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의 생명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양을 떠난 지 1천 수백년 지난 헝가리도 그러할진대, 이민간 지 불과 몇 십 년밖에 안된 사람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국음식을 그리워하고 식재료까지 아예 한국산을 찾는 것은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영향으로 보인다. 신토불이란 글자 그대로는 “사람의 몸과 그 사람이 사는 땅은 하나다”라는 뜻이다. 내용상으로는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어야 몸에 좋다”는 의미다. 과학적으로 명백히 구명(究明)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토불이’를 믿고 있다.

부모로부터 살과 뼈를 받아 태어난 우리는 대대의 조상(祖上)들이 잠든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을 섭취하고 살아왔다. 결국 조상과 자손(子孫)은 그 땅에서 생육되는 동식물을 통해 윤회(輪廻)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그러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생장하는 먹을거리가 좋지 않을 리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의 논리적 귀결이다.

북미(北美) 대륙의 사막지대에 사는 인디언들은 당뇨, 고도비만 등 성인병이 심각하다. 특히 당뇨는 3대 사망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불과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당뇨가 뭔지도 몰랐다. 그때 음식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이 나서서 인디언들이 조상 대대로 먹어온 전통식단을 알아봤더니, 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사막에서 자생하는 선인장들이었다.

선인장은 건조한 사막에 적응해 살기 위해 끈끈한 섬유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이 점액질 세포는 물을 오랫동안 강력하게 붙들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인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점액질 세포가 인체에 들어가면 위와 장에서 음식물 소화와 당분 흡수를 늦춰 주는 기능을 한다. 외부세계나 다른 문명과 멀리 떨어진 사막지대에서 수천 년 이상 살아온 원주민들의 몸은 서서히 사막 식물로 구성된 식단에 적응했다.

이렇게 사막 환경에 적응한 인디언들에게 현대사회에의 반강제적 편입은 독(毒)이었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분이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제때 적당히 배출하지 못해 당뇨병이 생긴 것이다. 미국 유타주(州)에 있는 국립건강연구소는 인디언 당뇨환자 8명에게 열흘 동안 전통식단과 비슷한 당분을 천천히 배출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운동을 하도록 했다.

쉽게 말해서 원주민 조상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열흘 만에 체중과 혈당수치가 크게 호전됐고, 원주민 스스로도 건강이 훨씬 좋아짐을 느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그 땅에서 난 음식물이 그 나라 사람 몸에 좋다는 ‘신토불이’의 사실적 궤적을 그린 실화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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