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쓰러진 유미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한 건 순전히 그녀의 고집 때문이었다. 유미는 무슨 일인지 한사코 병원만은 안 된다 하였고 우나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옥탑방으로 온 것이다. 실신하듯 쓰러진 유미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수건에 물을 적셔 그녀의 팔과 다리를 닦아 주길 몇 시간. 유미의 열이 간신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병원엘 가야죠.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요.”
우나의 눈에 걱정에 연민이 더해졌다.
자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이 세상의 단 한 사람. 우나를 바라보는 유미의 눈이 시려오는데 우나가 무릎을 꿇으며 고쳐 앉았다.

“내가 계속 생각해 봤는데요, 우… 우리 그냥 결혼해요.”
용기를 내 고백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 왔던 것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온 것이다.
“자꾸 만나기만 하면 뭐 해요? 쓸데없이 돈이나 쓰지. 그리고 필요하다는 그 돈, 내가 드릴게요.”

 
필요한 돈이라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유미가 우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으리라.

우나를 바라보는 유미의 눈에 한 줄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저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에 손을 내밀어 준 우나가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기 때문이며, 결코 그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 서러웠기 때문이다.

“흐미! 완전히 돌아버리겠고마이.”
일번지 카바레 지배인은 정말로 미쳐 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가 장기판의 졸처럼 부려 먹는 우나가 몇 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밤무대 시스템은 장기판과 다를 것이 없다. 대개의 장기 승패가 졸이 아닌 차나 포로 결정되듯, 밤무대의 매상을 좌우하는 것 역시 우나같은 쌈마이가 아닌 일류급 연예인이다. 하지만 장기판에서 꼭 필요한 것이 졸인 것처럼 밤무대에서 우나는 여간 쏠쏠한 존재가 아니다.

막간마다 무대에 올라 쇼의 여흥을 돋우는 데에는 우나만한 적임자가 없었으며, 지각하는 출연자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 역시 우나만한 사람이 없었다. 저비용 고효율. 그런데 그 우나가 몇 시간째 연락두절 상태이니 지배인으로선 미칠 만도 할 노릇이었다. 장기판엔 차를 대신해 죽어 줄 졸이 필요하듯 밤무대엔 A급 출연자를 대신에 욕을 먹어야 할 쌈마이가 필요한 것이다.

우나가 지배인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출연을 펑크 낸 개그맨 때문에 취객들이 입장료를 돌려달라며 한바탕 난리를 피운 직후였다.

“너 죽고 잡냐? 너 시방이 몇 시인 줄 알어!”
평소 같으면 피로회복 드링크 병부터 내밀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댔었을 우나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뭣하냐! 빨리 옷 갈아입지 않고! 너 시방 이 꼬라지로 스테이지 올라갈래?!”
지배인의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형, 밀린 케라, 나 오늘 다 받을래. 나,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뭐시여? 밀린 케라? 너 디질래! 너, 정말 잘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시방!”
지배인은 우나를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였다.

“내가 내 돈 달라는데 내가 왜 죽어! 저번에 나한테 빨아 먹은 돈 있지? 그것까지 다 줘! 알았어!”
정작 지배인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은 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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