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큰 병원에 가면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의 건강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읽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모든 사람이 다 건강하면 병원이 어떻게 먹고 살지? 정직하게 말하면 “당신의 회복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정도가 아닐까? “당신의 불건강은 우리의 소망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될 테고.

병원은 병을 고치러 가는 곳인데, 때로는 오히려 병이 더하거나 심신이 더 피곤해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지난주 어쩌다 보니 거의 매일 병원을 가게 됐다. 팔 아픈 게 낫지 않아서, 폐렴이라고 겁을 줘서, 3개월마다 받는 약을 타려고.

그런데 진료비를 낼 때부터 나는 어김없이 기분을 잡치게 된다. 여직원이 “2만5000원이세요”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나는 “2만5000원이세요가 아니라 2만5000원이에요 그러거나 2만5000원입니다, 이렇게 말하세요”하고 알려준다.

하지만 여직원들은 거의가 다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본다. 아마 속으로는 ‘아이 재수없어’하고 쫑알거릴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지, 올바른 경칭 사용법이 뭔지 묻는 여직원은 하나도 없다.

기분이 상한 채로 진료과에 가서 대기하고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간호사들이 “ΟΟΟ님, 들어오실 게요” “ΧΧΧ님 다음에 들어가실 게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걸리기만 해봐라,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혼내줄 테다, 이렇게 마음 먹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예약시간에서 벌써 30분이 지났는데 전광판에는 ‘현재 진료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계속 흐르고 있다. 그것도 기분 나쁘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간호사는 “다음 다음 차례세요” 그러더니 내 차례가 되자 “임철순님 들어가세요” 그러는 게 아닌가. 아아,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는 간호사도 더러 있구나 싶어 그 키 작은 간호사가 괜히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3분도 안 되는 진료를 받고 나왔을 때, 그 간호사는 나를 부르더니 “저기 가서 수납하시구요, 약국 가서 어쩌구 저쩌구…” 그러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간호사님, 수납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병원이 하는 거요. 나는 돈을 내고 병원이 수납을 하는 거지”라고 했다.

그 아가씨 눈이 동그래졌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의 말 계속-.”저기 가서 돈 내시구요, 이러거나 돈이라는 말을 하기 싫으면 진료비를 내시라고 하세요. 그게 옳은 말이니까”

그 간호사만 그런 게 아니다. 병원 사람들은 누구나 다 돈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면 큰일이 나거나 상스럽고 교양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돈 내는 걸 수납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을 해서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 수납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수납(收納)=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 들임. 수납(受納)=금품을 받아서 넣어 둠. 그러니까 환자한테 수납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이다.

비슷하게 잘못 쓰이는 말은 또 있다. 진료 신청을 했느냐고 물어야 할 때 “접수하셨어요?” 하고 묻는다. 접수는 자기네가 해야지 왜 환자가 접수를 해? 언제 환자들에게 자리 내준 적 있남?

이상하게 말하는 것은 여직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팔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면 남자의사도 나에게 “자, 돌아누우실 게요” “엎드리실 게요” 그런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말을 하느냐고 물으면 멋쩍게 웃기는 하는데, 그 다음에 가면 또 그런다. 자꾸 지적질을 해대면 팔을 더 아프게 치료할까 봐 겁나서 더 말도 못하겠고….

맨날 이런 식으로 병원에 가면 짜증나고 화가 나니 병이 나을 수가 있나? 정말 승질 나서 병원 못 댕기겠다. /임철순 한국일보 이사대우 논설고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