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임금의 애사가 서려 있고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 등이 산재한 강원도 영월은 아직도 첩첩산중 오지가 많고 산자수명한 천혜의 고장이다.

필자는 최근 옛 직장 후배가 영월군 한반도면에 개관한 미디어기자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이웃한 주천면 주천리에 들렀다. 200년 전 지었다는 조견당(照見堂)이란 옥호의 고택(古宅)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주천면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천년고찰 법흥사를 품은 사자산(1167m)의 줄기를 따라 주천강이 휘감아 돌아 풍류와 낭만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주천(酒泉)이란 지명은 이 동네 망산 기슭에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는 술샘에서 비롯되었다. 양반에게는 약주, 천민에게는 탁주를 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1호인 조견당은 산과 물과 어우러져 고택의 운치가 빼어나다.

조견당에 들어서자 안주인 안양순 씨(50·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반갑게 맞아준다. 안 씨의 남편 김주태 씨(52·문화방송 서울경인지사 인천총국장)는 조견당에서 태어나 자란 주천 토박이로 1996년 작고한 부친(김종길)에게서 고택을 물려받았다. 부부는 그동안 관리인에게 맡겨놓았던 조견당을 본격적으로 건사하기 위해 지난 6월 외동딸(8)과 함께 낙향했다.

안 씨는 이곳에 카페갤러리를 열고 손님이 오면 고택을 돌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조견당은 김해 김씨 안경공파의 일문이 조선 숙종 때 한양에서 주천으로 이주해 150여 년간 대를 잇다가 순조 27년에 상량한 한옥이다. 6년간 목재를 준비해서 3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수령 7백 년 이상의 소나무를 골라 만든 대들보는 지름이 1m가 넘어 우람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천년 고목이 조견당을 떠받쳐 수호하고 있는 셈이다. 1827년 김주태 씨의 7대조 할아버지가 건축한 당시에는 99칸이 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 때 대부분 소실되고 안채만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안채의 팔작지붕 옆면의 삼각형 벽면(합각)의 양쪽에는 해와 달의 문양이 각각 그려져 있다. 합각 아래쪽은 오행을 상징하는 오방색(흑·백·적·청·황)의 돌을 쌓아 화방벽(火防壁)을 만들었다.

조견당은 2007년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를 ㄴ자로 결합해 사랑채를 복원하고, 2009년에는 별채가 옛 모습을 되찾아 중부지방 한옥의 대표적인 특징을 고루 갖춘 고택으로 거듭났다. 안채 옆에는 400여 평의 연지(蓮池)를 복원, 사진작가들의 연꽃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마당 여기저기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짜리 밤나무를 비롯해 배나무, 돌배나무, 소나무 등이 고풍스러운 정취를 더해 준다. 안채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당호 ‘照見堂’은 불교의 반야심경 ‘조견오온개공도(照見五蘊皆空度)’에서 따온 말로 ‘세상의 진리를 밝게 비추어 보라’는 뜻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조견당 바로 옆으로 주천강이 흘러 선착장도 있었고, 행랑 끝이 모래사장에 이어졌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이 강변 10리에 걸쳐 울창하던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적송을 마구 베어 뗏목에 실어 가져가고 그 자리에 제방을 쌓는 바람에 조견당의 행랑과 부속건물 여러 채가 훼손되었다. 조견당의 안채와 사랑채 등 10여 개의 방과 대청마루에서 하룻밤 묵으며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정원에서 안주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소설가 오광진 씨(42)가 산책하다가 들렀다. 주천면이 고향인 오 씨는 얼마 전 단편소설「작연도」를 발표했다. 영월지역을 배경으로 한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조견당도 등장한다.

오 씨는 “조견당 연꽃 연못 한가운데 버드나무 두 그루가 자라는 작은 섬을 자주 보면서 인연은 만들어진다는 뜻에서 작연도(作緣島)란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필자는 조견당을 떠나면서 가문(家門) 안으로 들어가 대를 반듯하게 이으면서 근본을 지키고 사는 주인 부부가 부러웠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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