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영화의 3요소가 무대, 배우, 관객이라면 에로비디오의 3요소는 그것보다 훨씬 간소하다. 여배우, 카메라, 감독. 남자배우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세상엔 여배우만 나오는 에로비디오를 선호하는 변태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감독이 큐 사인을 하면 여배우가 몸짓을 하고 카메라가 그것을 담으면 된다. 얼마나 군더더기 없이 간소한 시스템인가? 그것이 에로비디오다. 그렇게 에로비디오 제작이란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뚝딱 해치워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그 ‘뚝딱’에 제동이 걸렸다. 에로비디오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감독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 새낀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기어 오는 거야! 내 머리털 나고 감독한테 돈 줘 가며 촬영해 보긴 처음이다.”
하릴없이 박 감독을 기다리던 카메라 감독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돈을 줘요?”
카메라 감독을 따라다니던 조수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 투자 안 하면 그동안 밀린 돈 안 준다고 배 째라는데. 하여튼 머리털 나고 그런 새끼는 처음 본다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박 감독에게 돈을 주었다는 말에 유미가 끼어들었다.

“유미 씨 밀린 출연료 받았죠? 그거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 건 줄이나 아세요.”
카메라 감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유미는 모두가 박 감독에게 속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박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 번호는 이미 사용이 중지되어 있었다.
전화번호뿐이 아니었다. 우나와 함께 찾아간 박 감독의 오피스텔 역시 집기는 다 빼내고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 우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우나야 큰일 났어! 이리 좀 빨리 와 봐”
전화 속 다급한 목소리는 근대였다.

“유미 씨, 박 감독 그 새끼가 난데없이 사극 씬 찍자고 한 적 있죠?”
유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완전히 작정을 한 거야. 한 방 크게 먹고 튀려고 작정을 한 거라고!”
“뭔데! 알아듣게 얘기 좀 해 봐.”

근대가 밝혀낸 박 감독의 사기 수법은 이랬다.
우선 스텝과 배우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질질 끌다 결국엔 촬영비용이 없다며 나자빠진다. 스텝과 배우가 돈을 달라고 하면 비디오 출시만 하면 큰돈을 벌수 있으니 촬영을 재개할 수 있게 투자를 하라고 한다.

그렇게 촬영을 지연시키며 영감이 떠올랐다며 사극 형태의 씬을 찍자고 하면 스텝과 배우는 못 받은 돈 때문이라도 몇 번 정도는 촬영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밀린 돈을 달라며 배우와 스텝은 촬영을 거부하고 박 감독은 그동안 찍어 놓았던 영상으로 현대와 사극 버전 두 개의 에로비디오를 제작한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스텝과 제작진은 자신들이 못 받은 돈을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박 감독에게 돈을 빌려준다.

박 감독은 사극과 현대물 2개의 에로비디오를 출시하고 스텝과 배우에게서 뜯어낸 돈 챙긴 다음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당했어! 완전히 당한 거라구! 그 새끼, 돈 먹고 튀었다고! 으이! 씨발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우나와 유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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