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조 때의 무신 남이(南怡 1441∼ 1468)장군의 추모비와 허묘가 있는 남이섬은 1944년 청평 댐을 건설할 때 북한강 강물이 차올라서 생긴 내륙의 섬이다

. 선착장은 경기도 가평군 달전리에 있으나 둘레 5km, 면적 43만㎡의 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가 행정구역이다. 나이 18세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북방의 여진족을 물리친 장군의 전설이 서려 있는 남이섬은 필자에게는 추억의 섬이다.

1970년 필자는 가평의 모 군단장 숙소의 당번병이었다. 군단에서 멀지 않은 남이섬에는 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골프장이 있었다. 군단장은 주말이면 휘하의 부대장, 참모 등과 섬에서 골프를 쳤다. 군용모터보트를 타고 섬을 오갔으며, 한겨울에 강이 얼어붙으면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어느 여름날 군복 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골프가방을 메고 홀을 돌다가 잔디밭에서 놀던 친구들을 보기도 했다. 삼성장군의 캐디는 필드에서 그리 힘들지 않았다. 군단장이 친 공이 수풀 속이나 강섶에 떨어지면 같이 간 일행과 그 캐디들이 바로 찾아주기 때문이었다.

어느 참모는 공을 못 찾아 뒤처지게 되자 아이언 채로 당번병의 머리를 때리며 “야! 대학 다니다 온 놈이 공도 제대로 못 찾느냐”고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군단은 오래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고, 지금도 군대에 당번병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이섬 골프캐디는 내 청춘의 초상(肖像) 하나로 각인돼있다.

남이섬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민병도 씨(1916~2006)가 1965년 섬을 사들여 불모지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고 이듬해 경춘관광개발(주)를 설립, 종합휴양지로 조성해왔다. 2000년부터는 한국도자재단이사장이며 시각디자이너인 강우현 씨(59)가 주식회사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해 운영하고 있다.

남이섬에는 강 대표의 역발상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빛난다. 서울 도심의 골칫거리인 은행나무잎으로 소로를 단장하고 인사동 폐 보도블록을 가져와 인사동 길을 만들었다. 지천에 널린 소주병을 모아 크리스마스트리를 곳곳에 세우기도 했다.

1980년대 강변가요제로 유명해진 남이섬은 최인호 원작의 영화 ‘겨울나그네’(1986년)와 KBS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2002년)의 촬영지로 각광받으면서 국내는 물론 동남아 관광객의 단골 코스가 됐다. 지난해에만 외국인 42만여 명 등 23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남이섬에는 아름다운 숲길이 많다.

한국일보 자매지인 ‘주간한국’이 1965년부터 해마다 개최한 ‘밤 줍기 대회’도 남이섬 홍보에 큰 몫을 했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밤을 주우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대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이곳의 밤은 다람쥐와 청설모들의 몫이 되고 있다.

2006년 3월 남이섬은 동화 속 상상과 꿈을 키우는 섬으로 가꾼다는 취지에서 국가형태를 표방하는 특수관광지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 독자적인 국기와 국가는 물론, 섬에서만 통용되는 화폐, 여권, 우표도 있다.

남이섬은 선착장에 있는 인어공주상으로 국제 안데르센상의 공식스폰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이섬 직원들은 55세가 1차 정년이지만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누구나 80세까지 일할 수 있다. 그래서 정년퇴직한 교장이나 지점장 등도 이곳의 환경미화원을 자청하고 있다.

그 옛날 유명배우의 별장이 있던 곳에는 객실 45개를 갖춘 호텔과 가족형 콘도별장들이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남이장군이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남자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뒷날 그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라고 읊은 북정가(北征歌)가 생각나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그 섬, 남이섬에 가고 싶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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