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침 방송에서 한 개그우먼이 주부들을 상대로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5분 특강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주도 재주지만, 나는 40대의 그녀가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는 등 열심히 자신을 계발(啓發)하며 사는 모습을 예쁘게 보아왔다.

그녀가 제시한 행복하게 사는 법은 간단했다. 걷기, 읽기, 노래 부르기 세 가지였다. 그중에서 특히 세 번째가 마음을 끌었다. 왜냐하면 나도 노래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경쾌한 노래보다 느린 노래를, 흥겨운 노래보다 슬픈 노래를 더 좋아한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신의 영역이요, 슬픔이야말로 인간사 같아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게다. 많은 이가 비슷한 심정일 게다.

우리 고유의 노래는 대개 애조(哀調)를 띈다. 이어령(李御寧) 선생은 어느 글에선가 “한국인의 핏속에 수심가(愁心歌)적 패이소스가(Pathos) 흐른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래서 서양음악이지만, 사라사테의 ‘지고이넬바이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들려주는 애잔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심금을 울리는지 모른다.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나, 호소력 짙은 목소리의 미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라트라비아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경건하면서도 비원(悲願)이 깃들어 있어 즐겨 듣는다. 누가 부르든 진혼(鎭魂)하는 힘이 있다.

나는 가수다〉에서 이름을 날린 가수 박정현의 〈명성황후〉 주제가 ‘나 가거든’은 애절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국창(國唱) 임방울(1904~1961)의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명창 안숙선의 ‘심청가’는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가락이다. 특히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고 옥에 갇혀 한양 낭군(이몽룡)을 그리며 부르는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성의 우렁찬 목소리가 여인의 한(恨)을 어쩌면 그리 쏙 빼놓게 묘사하는지 감탄스럽다. 영화 〈서편제〉에서 여주인공 오정해가 부르는 ‘심청가’의 실제 목소리가 안숙선의 창(唱)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녀가 부르는 심청가가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가수 이동원의 ‘내 사람이여’, 송창식의 ‘사랑이야’, 조성모의 ‘가시나무’, 김범수의 ‘약속’ 등은 내가 부르기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모두 슬픈 가락들이다.

슬픔은 넉넉한 사람의 몫은 아니다. 뭔가 부족하고 빼앗기고 상처 입은 사람의 몫이다. 애달픔, 그리움, 원망, 한의 다른 표현일 게다.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 게다. 이런 노래를 듣거나 부르고 나면 꽉 막혔던 가슴이 뚫리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아 찢어진 마음이 조금은 아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년 가을, KBS-2TV의 인기프로 〈남자의 자격〉이 뽑은 50세 이상 청춘합창단 지원자들을 보았다.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남편을 사별한 아내, 암을 극복했거나 투병 중인 환자, 가족부양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하고 싶은 노래를 꾹 참아온 70대 노인 등. 이들은 노래를 통해 슬픔과 어려움을 승화시켜왔다고 한다.

억울한 말을 들을 때, 선의를 곡해당할 때, 남편이나 아내가 짜증을 낼 때, 혼자서라도 노래를 불러보라. 심신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면 효과가 더 높다. 쑥스러우면 콧노래도 괜찮다. 아는 한의사로부터 콧노래를 부르면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콧노래는 복식호흡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복식호흡을 하면 내장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라 했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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