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내가 다 들었대도. 내가 남자가 코가 크면 코딱지가 크다고 했을 때, 김민수 대리하고 눈이 딱 마주쳤잖아. 그때 내가 무안해서 자리를 피하려고 간 데가 자판기였거든. 음료수나 하나 꺼내 마시려고 말이지. 그런데 김민수 대리하고 제갈병철 대리가 자판기 쪽으로 오는 거야. 그래서 얼른 자판기 옆쪽으로 숨었지.

그런데 진짜 별꼴에 반쪽인 거 있지. 김민수 대리가 뭐래는 줄 알아? 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제갈병철 대리가 김 대리한테 그러더라. 내가 김 대리한테 관심이 있는 거면 자긴 옥이 너하고 결혼 벌써 결혼한 거래. 제갈 대리가 옥이 너 좋아 하긴 진짜 좋아 하나 봐. 아얏! 얘, 왜 때려? 뭐? 제갈병철 얘긴 꺼내지도 말라고? 징그럽다고? 알았어. 그런데 너 제갈 대리 진짜 싫어하는 모양이구나? 알았어, 너하고 제갈병철 엮이는 얘긴 꺼내지도 않을게.

 
하여튼 내가 자판기 뒤쪽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어 대는 거야. 그런데 어디까지 얘기했지? 어, 코딱지. 김민수 대리가 그러는 거야. 야, 나 학교 다닐 때 별명이 뭐였냐? 그러니까 제갈 대리가 코딱지 그러는 거야. 그래! 김민수 대리 고등학교 때 별명이 코딱지였나봐. 그런데 그 인간이 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어서 자기 별명이 코딱지인걸 알고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코딱지 소리 들었을 때 그렇게 날 뚫어지게 쳐다봤었나 봐. 진짜 황당하지 응.

그런데 더 황당한 게 뭔 줄 아니? 정말 황당한 얘긴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거야. 김민수 대리 얘기를 들은 제갈 대리는 한 술 더 뜨더라. 이제 제갈공명의 후손인 제갈병철의 때가 왔다는 거야. 그러더니 무슨 중요한 얘기하도 하듯 투량환주,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빼낸다.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김민수 대리가 투량환주? 대들보는 뭐고 기둥은 뭐야? 알기 쉽게 좀 말해 봐, 그랬고. 제갈 대리 말로는 대들보는 유머고 기둥은 가슴이래요.

일단 유머로서 대들보같이 무겁게 닫혀 있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은근슬쩍 내 마음의 기둥을 훔쳐 내면 내 지조와 절재가 와르르 무너진다나. 어떻게 된 거 아니니? 난 정말 둘 다 미쳤다고 봐. 김민수 대리가 그 얘길 듣고 뭐랬냐고? 무슨 상상을 했는지 혼자 얼굴이 시뻘게져서 침을 꿀떡 삼키더라.

그리고 넋 나간 사람처럼 그러는 거야? 와르르? 그러더니 덥석 제갈 대리 손을 잡는 거야. 자기는 제갈 대리만 믿는다나? 그런데 더 가관이 뭔 줄 알아? 제갈 대리가 김 대리한테 이러더라고. 오늘 저녁 회식 장소로 갈 때 내 옆으로 다가와서 진지하게 물어보래. 스페인에서 가장 불효막심한 놈이 누구냐고. 그리고 내 귀에다 속삭이듯 말하래. 아빠이빨 까부렸쑤. 내가 빵빵 터질 거라나? 울고 싶다 진짜.

김 대리는 그걸 믿는 눈치야. 그렇게 유머로서 내 마음의 문을 연 다음 회식 자리에서 김민수 대리의 뜨거운 가슴을 이야기하라는 거야. 그런데 김민수 대리 정말 덜 떨어진 것 아니니? 김 대리가 그 이야기 듣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자기 가슴을 만져 보더니, 자기 가슴은 별로 안 뜨겁다는 거야. 그랬더니 제갈공명의 직계 후손인 제갈병철이란 인간이 술 마시면 뜨거워진대. 제갈공명이 자기 후손 중에 저런 인간이 있는 줄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얘기야. 무슨 덤 앤 더머도 아니고 나 참 기가 막혀서. 얘, 그 인간들 오늘 저녁 회식 때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이따가 진짜 조심해야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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