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일요일 KBS 2TV에서 ‘남자의 자격’을 보았다. 그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진인 이경규 등 개그맨과, 일반인 등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패밀리합창단이 부산 국제합창대회에서 은상을 받는 과정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금상은 어느 단체가 받았는지, 금상 위에 대상이 또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아 무슨 이런 방송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패밀리합창단에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득히 47년 전인 1965년 가을에 내가 합창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가 주최한 학예회에서 우리 2학년 3반 학생 전원이 음악 선생님에 의해 합창단원으로 ‘선발’돼 대전 중도극장 무대에 선 것이다.

그때 부른 노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장기타령’. ‘에헤~! 상투배기 저 노인네 대강뚱땅 뚱땅뚱땅 장기만 둔다네. 장이야 군야. 장 받아라~! 포가 뜨면 차 떨어진다. 얼씨구나 지화자 좋다. 무명색에 밝은 달에 긴 담뱃대 꼭 들여 물고, 에헤~에헤~이야! 장기판 술 한 상에 세월이 간다.’이런 가사였다. 다른 노래는 제목도 가사도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그런 무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달쯤 전에 중학교 동창들이 오랜만에 서울에서 만나 2차를 갔을 때 합창단 이야기가 나왔다. 기억력 좋은 친구가 말을 꺼냈는데, 그도 가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누가 받아쓰라고 불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가사가 생각났다. ‘언덕을 넘어 가세. 휘파람 불며 불며. 하늘은 맑고 푸른 하늘. 저 너머 목장으로. 부르자, 즐거웁게 손에 손을 잡고서.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겨운 임이 라라라라 염소영감도 흥겨운 노래 부르면서 발걸음도 맞추우자. 오늘도 유쾌하게.’

하지만 나도 뒷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한 소절씩 노래를 불러보면서 겨우 가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 8명 중 어느 누구도 제목은 대지 못했다. 그런데 가사 중 이상한 게 있다. 우리의 기억에는 분명히 ‘겨운 임’인데 이게 무슨 뜻인가? ‘겹다’라는 말은 ‘정도나 양이 지나쳐 참거나 견뎌 내기 어렵다, 감정이나 정서가 거세게 일어나 누를 수 없다, 때가 지나거나 기울어서 늦다.’라고 사전에 풀이돼 있다. 우리가 ‘흥겨운’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가사 자체도 그렇지만, 나에게 더 놀라운 일은 그 학예회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 점이었다. 내 머리 속 그 무렵의 기억마당에 누군가가 시커먼 먹물을 부어버린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소년 시절에 변성기를 앞둔 새된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했던 추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남들이 듣건 말건 호프집에서 두 노래로 합창을 하며 흥겹게 놀았다. 나는 그때 노래를 시킨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넌 바리톤인가 보다.”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개인별 음역을 파악해 합창 파트를 정하려고 발성을 시킨 것 같은데, 내가 왜 그때 할아버지처럼 낮게 깔리는 소리를 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잊어버리는 게 많다. 친구들끼리 앉아서 이야기하다 저마다 한 글자씩 생각해 냄으로써 사람의 이름이나 함께 경험한 일을 되살려 내는 일이 흔해졌다. 다산 정약용은 <노인일쾌사>라는 연작시에서 머리털이 없고 이 빠지고 눈 어둡고 귀먹은 것, 틀에 얽매이지 않고 멋대로 글을 쓰는 것, 하수와 바둑을 두는 것 등 여섯 가지를 즐거운 일이라고 읊었다. 옛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왜 빠졌을까? 그것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보다.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 나의 가족과 이웃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이사대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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