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가 ‘코코’라는 이름의 강아지 한 마리를 가져왔다. 태어난 지 두 달된 잉글리쉬 코커스패니얼 품종이었다. 얼굴은 조막만 해도 작은 수건처럼 넓적하고 축 늘어진 두 귀가 귀티나 보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옛날 영국에서 멧도요류나 꿩을 사냥하던 수렵견이 조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몸놀림이 날래고 잽싸다. 녀석은 코를 바닥에 대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 사냥개 피를 타고났으니 후각이 예민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벗어놓은 양말이나 러닝셔츠에 특히 환장한다.

무료한 날에는 강아지라도 곁에 있으면 좋은 동무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코코가 온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개를 유난히 싫어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개털이 문제였다. 붙임성 좋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실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코코 덕분에 ‘적막강산’같이 조용하던 집안에 점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야행성인 코코는 낮에는 빈둥빈둥하다가 밤이 되면 놀자고 극성을 부린다. 코커스패니얼을 비글, 슈나우저와 함께 ‘세계 3대 지랄견’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벽 2시에도 잘 생각을 하지 않는 코코의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지금 몇 신데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하느냐?”라고 언성을 높이는 날이 늘어만 갔다. 코코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면서 조금씩 스킨십을 늘려 가던 아내는 어느새 목욕도 시키고, 가슴에 품기도 하면서 손녀 대하듯 한다. 놀라운 발전이다.

지난 여름,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치던 날 밤부터 코코는 거실에서 혼자 자려고 하지 않는다. 꼭 내 옆에서 잔다. 코코가 우리 집에 온 뒤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나는 해마다 여름이면 보신탕을 즐겨 먹었다. 특히 수육을 좋아했다. 그러나 저절로 식성이 변해 보신탕은 이제 금기 음식이 되었다.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마음이 싱그러워졌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코코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현관에 들어서면 눈을 반짝이며 두 귀를 너풀대면서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그때마다 생각해 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가 이토록 나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온몸으로 반겨 준 사람이 있었던가? ‘개xx’라고 엉겁결에 내뱉던 욕은 ‘개만도 못한 놈’으로 어느새 순화되기도 했다.

어느 날 코코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아내가 벗어 놓은 덧양말을 녀석이 덥석 문 것이다. 나는 덧양말을 뱉게 하려고 닭고기 먹이를 주었다. 경험 부족이 화를 자초했다. 코코는 닭고기로 된 먹이까지 입속에 넣고 우물대더니 그대로 삼켜 버린 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조바심이 났다.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전화했다. 수의사는 삼킨 것이 소장에 있으면 끄집어낼 수 있으나, 아래로 내려갔으면 개복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다음날 서둘러 병원으로 가면서 “저 어린 것의 몸에 칼을 대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나도 모르게 기도를 했다. 다행히 삼킨 것이 소장에 있어 구토 유도제로 꺼낼 수 있었다. 암캐인 코코는 지난 여름 20여 일 동안 생리를 하면서 우리 부부를 괴롭혔다. 기저귀를 채우면 바로 벗어 버리고 소파에까지 피를 묻히고 다니는 바람에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달 불임수술을 해 주기로 했다.

수술은 간단했지만 축 늘어져 나오는 녀석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 수술을 후회하기도 했다. 코코는 수술하고 꿰맨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목에 ‘엘리자베스 칼라’(일명 깔때기)를 쓴 채 10여 일을 지냈다. 삿갓 쓴 강아지 신세였다.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코코는 내 여생의 또 다른 반려자다. 한밤중 코를 골면서 자다가도 꿈을 꾸었는지 냅다 짖으며 현관 쪽으로 달려나가는 녀석을 보면서 늘그막에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코코야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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