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안 지었지만 존경받는 국무총리가 되긴 틀렸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물러나면서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 발언을 접하는 순간 정말 착잡했습니다. 제 나름 그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를 십수년 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전 직장인 한국일보 부국장일 때입니다. 당시 일주일에 한 명씩 이야기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나 신문 한 면 전부에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를 법조인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우리 사회의 사표가 될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헌법재판소장 임기를 한 달쯤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두어 시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솔직하고 지혜로운 대답으로 저를 감복시켰습니다. 당시 사회와 법조 현안에 대해서도 그랬거니와 사람으로서도 저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들을 해 주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일어서서 인사를 나눌 때 그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걸 보았습니다. 저런 신체조건으로 우리나라 대표적 법조인이 되다니! 그 불편과 편견은 어떻게 견뎠을까?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았을까? 저 인품은 어떻게 형성됐나?

저는 이런 물음표와 느낌표에 대한 답을 담아 인터뷰기사를 썼습니다. ‘존경’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어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제 속마음이 금세 드러나는 기사였습니다. 저는 그때 60여 명의 인물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는데 제 마음에 들 정도로 잘 썼다 싶은 것, 즉 존경할 만하다 싶은 인물은 몇 안 됩니다. 그 기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기사 좋았다.’, ‘훌륭한 분을 알게 해줘 고맙다.’는 칭찬받은 기억도 있습니다.(나머지는 그저 그런 것들이고 아예 지워버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 이후로는 만난 적도, 소식을 나눈 적도 없지만 ‘우리 사회에 본받을 원로가 없다, 뒤따를 사표가 없다’는 말이 나돌 때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포털사이트에서 그 기사를 찾아내 후배를 시켜 코스카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그가 총리가 되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고, 제가 좋은 기사를 썼던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낙마했습니다. 제 기사는 엉터리가 됐습니다. 사퇴 발표문에서 그는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에게 걱정을 끼치고 박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덕’을 ‘부도덕’으로 바꿔 읽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좋게만 써 놓은 저는 정말 착잡합니다. 그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지고 대신 연민이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저는 잘못한 게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를 만나면서 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묻고 싶은 것만 묻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게 큰 잘못이지요. 그때 제가 그에게 ‘재산은요?’ ‘자제분들은요?’ ‘세금은요?’라고 물을 수 있었더라면 그 기사는 달리 나왔을 겁니다. 아니면 안 썼거나.

지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 쪽만 보고 가면 항상 뒤탈이 있다.’는 것, 그겁니다. 기사뿐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모두가 그렇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지 않습니까? 사퇴하던 날 그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소망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말이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한 쪽만 보고 갔을 때의 결과가 어떤가를 알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스카 블로그에 올린 그 기사를 지우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눈으로만 보면 나쁜것도 좋다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국무총리는 물 건너갔지만 그가 남은 생애에서라도 다시 존경받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극히 힘들겠지만.  /정숭호 코스카저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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