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프라 건설 충분” 일부서 현실 오도
 골목길 등 생활인프라 투자에 치중하면
 시설노후화 등 10년 뒤 국가에 큰 부담

자동차나 뱃길, 공항과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은 개인이나 기업의 자산이 아닌 국가자산이다. 국가기반시설의 배후 역할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약화될 경우 부작용이 금방 드러난다. 선진국일수록 국가기반시설 보유량이 많고 건강한 이유도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인프라가 충분한 것처럼 착각하는 소리가 잦아지고 있다. 국가인프라와 개인인프라 차이를 무시하는 정책이 강화될까 두렵다. 간선도로와 지선도로는 국가인프라다.

아파트 골목길이나 동네 길은 개인인프라다. 국가인프라는 생산이나 물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인프라는 해당 주민의 이동 편익성은 제공하지만 경제 활동이나 생산에는 직접 기여하지 못한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면 성장과 복지, 일자리와 소일거리를 대치적 관계로 만든다.

한국의 경우 국가기반시설이 불충분함에도 불구, 복지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선호도를 따르겠다는 편향된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즉,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생활형 복지에 투자를 늘리는 게 마치 국민이 원하는 정책인 것처럼 포장한다. 개인에게 우선순위를 고르라면 당연히 동네길이다. 일자리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에서 개인인프라 투자는 곁가지에 불과하지 줄기와 뿌리가 될 수 없다. 줄기와 뿌리가 성장과 일자리 만들기의 주역이지 곁가지는 주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반시설 홀대가 국가 안보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재인식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인프라 홀대에 대한 반성론과 함께 경제성장 여력과 건강성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쇠망론’의 저자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을 교통시설이나 에너지시설 등 국가기반시설 홀대로 지목하고 있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미국경제 침체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미국의 국토안전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발간한 보고서에서 국토안전의 최대 적은 알카에다 같은 외부 테러리스트가 아닌 바로 노후화된 국가기반시설이라 지목했다. 미국토목학회(ASCE)는 노후화된 교통시설의 건강성을 복원하는 데 향후 5년간 최소 연 4000억불(한화 약 440조원)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평가보고서를 제시했다.

시설노후화로 인한 국토안전 문제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2월 총선에서 승리한 자민당은 노후화된 시설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최소 연간 20조엔(한화 약 260조원)을 10년간 투입해야 한다는 공약까지 내놓을 정도로 심각함을 호소했다.

침체된 세계경제의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들이 보유한 현금을 사회간접시설 투자쪽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적 컨설팅기관의 글로벌책임자가 꼭 1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주장했다. 당면해 있는 세계경제 상황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20세기 말 미국발 IT 혁명에 준할 만큼 큰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선진국의 이런 움직임을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건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으로 기반시설을 방치할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육상교통 보유량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 1970년대에 집중 건설된 주요 육상 교통시설도 이제 40년으로 접어들만큼 노후화 정도도 심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대선공약 지키기 명목으로 건설예산을 삭감하려는 움직임도 예상된다. 간선이나 지선도로 확장보다 골목길 개선이 건수는 많으나 적은 예산으로도 국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예산 삭감은 반드시 후유증을 유발한다. 부족한 재정을 메꾸는 가장 쉬운 처방은 현재가 아닌 10년 후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게 확실하다. 국가기반시설과 개인인프라 역할과 기능에 대한 역할 재인식이 필요하다. 생활형 인프라 투자가 국가인프라 투자를 절대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우리에겐 아직 줄기와 뿌리가 곁가지를 지탱해 줄 만큼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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