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은연중에 “절대(絶對)”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명사적 의미와 부사적 의미로 나뉘어 쓰인다. 명사적 의미는 다른 존재로부터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상태, 즉 ‘무소불위’를 의미한다. 그리고 부사적 의미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절대’라는 말을 남용해도 되는 것일까? 옛 성현들도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을 벌였는데, 논어 미자편에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라는 구절이 나온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는 뜻으로 절대란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중용의 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러한 명제는 현대사회에서도 변함없이 통용된다. 절대적인 옳음이나 절대적인 잘못이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인을 극악무도한 죄로 단죄하지만, 전쟁 중에는 적군을 무차별 살상해도 살인죄로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내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넌센스다.

왕조시대의 왕을 절대권력자라 부른다. 과연 그럴까?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도 조정이라는 다른 권력집단과 균형을 이루면서 권력을 유지한다. 만약 어느 한 쪽으로 힘의 기울기가 쏠리게 되면 곧바로 반정이나 폭정으로 발현한다. 따라서 왕권도 엄밀한 의미에서 절대권력이라고 하기 어렵다.

자연과학분야는 어떠한가? 유사 이래 인류는 시간과 공간의 구조는 영원불변의 절대성을 가진다고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성이론을 확립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으로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이처럼 여러분야에서 상대성이 더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절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달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소기업 손톱밑 가시뽑기’ 정책의 일환으로 ‘분리발주 제도화’를 공표했더니 종합건설업계가 한바탕 난리를 쳤다.

건설산업기본법 그 어디에도 전문건설은 하도급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도 국가계약법 시행령의 한 귀퉁이에 있는 요상한 문구 하나로 지난 수십년동안 ‘전문건설업자는 하도급자’라는 등식이 굳어졌다. 이제야 건설업계의 오랜 고질병인 신분제라는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것일 뿐인데도, 종합건설업계가 목소리 높여 반발하는 그 모습을 보니, 갑오개혁 때 신분제를 철폐하면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전국의 양반사대부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입맛이 씁쓸하다. /김정환 코스카 중앙회 건설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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