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소설 <52>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그땐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귀 뚫은 남자 한 명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다니, 과장 아니냐고? 너,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을 해 봐. 네가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광적인 팬이야.
 
그래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모나리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어. 천신만고 끝에 그림을 찾았는데, 누가 모나리자의 양 눈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놨다고 하면, 하늘이 무너지겠니? 안 무너지겠니? 내가 귀는 수복(壽福)이라고 했지? 귀는 그 사람의 목숨과 복이 담긴 곳이야.
 
그런데 거기에 구멍이 뚫려 있으니 내 마음이 어땠겠냐고. 내 마음에도 구멍이 뻥하고 뚫린 거지. 하여튼 그때 난 실의에 빠져 터벅터벅 호텔 로비를 나오고 있는데 난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왜 소설책에 보면 심장이 멈춘다는 표현이 있지? 나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니까.
 
저쪽에서부터 어떤 남자가 걸어 나오는데, 아까 본 귀에 구멍 뚫은 남자 얼굴은 얼굴도 아닌 거 있지? 얼마나 완벽한 관상이었냐면 저 사람 혹시 관상 책에서 튀어 나온 얼굴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고, 난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들고 있던 핸드백을 놓칠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그게 또 우리를 연결시켜 준 거야. 그 남자가 내 핸드백을 주워 준 거 있지. 매너도 죽이더라고. 그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내가 그 남자에게 건넨 첫 번째 말이 뭐였는지 아니? “귀는 안 뚫으셨죠?”라고 했다니까. 그 왕자님 입장에선 또 얼마나 당황했겠니? 멀쩡한 여자가 밑도 끝도 없이 귀는 안 뚫었냐고 물어 봤으니 말이야.
 
그런데 일이 되려고 했던지 그게 또 인연이 됐던 거야.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날 좀 이상한 사람으로 봤겠지만,  그 남자는 관상이 좋아서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고. 내 안색을 살피더니, 놀란 일 있냐며 진정 좀 하게 물을 좀 마시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물은 됐고요,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실래요?” 호텔 맨 꼭대기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 갔는데 분위기 있는 곳에서 보니까 그 남자 관상이 더 좋더라고.
 
천하를 움직일 만한 이마, 인복을 타고 난 눈썹, 창과 같이 맑고 투명한 눈, 지성과 재력을 겸비한 코, 안정된 배경을 보여 주는 입, 건강을 보증하는 차돌같이 단단한 귀. 성적표로 따지면 올백인 거고, 보석으로 따지면 티 없는 옥, 새로 따지면 봉황, 약초로 따지면 산삼 뭐 그 정도였어. 그래, 나 완전히 심 본 거지. 오죽했으면 그 남자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한 백 번쯤 외쳤다니까. 심봤다-!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 남자 담배를 피워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더라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우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래서 그러라고 하니까 글쎄 이 왕자님 시가를 꺼내는 거 있지.
 
그런데 내가 그날 시가를 처음 봤어. 시가를 처음 봐서 그런지 굉장히 독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독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천만에요, 일반 담배는 약 90여 가지의 화학약품을 첨가해 독성이 높지만, 시가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해가 적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가를 애용하는 이유는 천연 제품이라 재배지의 향토나 기후를 그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거 있지? 그런 것까지 다 신경을 쓰냐고 물으니, “그럼요, 모두 제각기 특징이 있으니까요.” 그러더라고. 나 완전히 반했잖아. 만날 비빔밥, 짬뽕 그런 것만 먹는 김민수 대리랑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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