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소설 <56>…장밋빛 인생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그렇게 내가 김칫국 한 사발을 들이키고 있는 동안에도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다면 믿겠어? 말이 좀 거창한 것 같지만, 그건 정말이지 운명의 수레바퀴라고밖에 할 수 없어.

잘 들어 봐. 내가 그 재벌 2세 때문에 김칫국 한 사발 마셨다고 했잖아. 그 재벌 2세가 그러더라고. 자기는 두 번이나 결혼할 용기가 없다고. 결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서 물었지. 혹시 유부남이냐고. 그랬더니 유부남은 아니고 이혼남이래.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자기는 한 여자의 인생을 책임질 만큼 자신을 희생할 용기가 없어서 이혼했다는 거야.

기막히지 않니? 그래서 물었지. 사랑이 용기를 내야 할 정도의 희생이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럼 진즉에 왜 그걸 말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자기가 그걸 왜 말해야 하냐며 날 이상한 여자 취급하는 거 있지? 그러면서 자기한테 필요한 건 아내가 아니라 여자라나? 그러면서 나도 같은 생각 아니었냐는 거야.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탁자에 있는 물컵을 들어 그 재벌 2세의 얼굴에 뿌리고 뛰쳐나왔는데, 정말 서글프더라고. 어렸을 때 만화 영화에서 불을 뿜는 공룡을 보고, 난 정말 공룡이 불을 뿜는 줄 알았는데, 우리 이모가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어. 어린 난 이모를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난 공룡이 불을 뿜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고등학생 때 내가, 나는 아무 조건 없이 나만을 죽도록 사랑해 주는 남자와 내 인생의 첫 키스를 하겠다고 하니까 그 이모는 그랬어. “넌 수녀가 되겠구나.” 그때도 난 이모를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 말이 다 맞았던 거잖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관상이고 뭐고 이모 말대로 확 수녀나 돼 버릴까! 하고 말이야. 아니면 확 죽어도 좋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아까, 그 시간에도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다고 했지? 그게 무슨 말이었냐면,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김민수 대리가 있었던 거야.

제갈공명의 직계 후손인 제갈병철 대리 때문에 말이야. 무슨 말이냐면, 제갈 대리가 김민수 대리 장가보내 준다고 큰소리 뻥뻥 친 건 알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하고 김민수 대리랑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까 김민수 대리를 옥이하고 연결시켜 주려고 했었대.

그래서 김민수 대리하고 옥이를 그곳으로 불렀는데, 김민수 대리가 커피숍으로 오다 실의에 빠져 수녀가 될까 아니면 차라리 죽어 버릴까 고민하던 날 봤던 거야. 거기서 둘이 만난 게 운명의 수레바퀴냐고? 아니, 진짜 운명의 수레바퀴는 지금부터야.

내가 그렇게 정신 줄을 놓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하도 경황이 없다보니 빨간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넜던 거야. 갑자기 끽-! 하는 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떤 차가 코앞까지 다가온 거 있지? 그래! 자동차에 치일 뻔했어! 죽는 줄 알았지.

그런데 그때, 김민수 대리가 달려와 날 밀쳐내고 대신 치었던 거야. 그때 난 잠깐 기절을 했다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정말 난리도 아니더라고. 사람들이 빙-둘러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글쎄 김민수 대리가 내 무릎을 베고 기절해 있던 거 있지.

그런데 얘기가 좀 이상해지지 않니? 기억 안 나? 김민수 대리가 옛날에 그랬잖아. 자기 소원이 여자 무릎을 베고 자는 건데, 그러면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던 말. 난 정말 그때까지도 내가 김민수 대리랑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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