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5)

경사로 돌아가는 사신을 만나

고원동망로만만(故園東望路漫漫)
쌍수룡종루불건(雙袖龍鐘淚不乾)
마상상봉무지필(馬上相逢無紙筆)
빙군전어보평안(憑君傳語報平安)

동쪽 멀리 고향을 바라보니 길은 멀고도 아득하여
두 소매 흥건하건만 눈물은 마르지 않네
말 타고 가다 만나 종이도 붓도 없으니
그대가 안부 전해주게, 나는 잘있다고.

몇 구절밖에 생각나지 않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주억거리며 우체국을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 리포트 용지는 종종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편지지로 전용되곤 했다.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도서관에 앉아 한나절 내내 편지만 썼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진 그 편지들은 헌책에 뒤섞여 상자 안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한 후로 줄곧 상자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다. 전자우편이 일상화 된 지금은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아무래도 편지지 앞에서 펜을 들고 고심하던 옛날에 비해 정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시는 당나라 때 잠참(岑參)이 쓴 ‘경사로 돌아가는 사신을 만나’라는 작품이다. 잠참은 관료집안 출신이나 그가 어릴 적에 부친이 세상을 등지면서 가세가 급속히 쇠락했다. 사촌 형에게 글공부를 배워 서른 살 무렵인 744년에 진사에 급제한 이후로 6년에 걸쳐 변방에서 생활하였다. 그 기나긴 변방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걸작을 써냈기 때문에 그는 종종 고적(高適)과 더불어 당나라 때의 대표적인 ‘변새시인’(邊塞詩人)으로 꼽힌다.

‘변새시’에는 변방의 혹독한 기후와 낯선 이민족들의 풍속이 자주 배경으로 언급되나, 이 시에서는 고향과의 아득한 거리와 그 거리보다 한참 큰 그리움만이 드러나 있다. 두 소매를 가득 적시고도 마르지 않는 눈물에, 혹독한 환경 속에서 수시로 전화(戰火)에 휩쓸려 생사를 오가는 변당의 힘겨운 삶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신에 대한 부러움이 함께 녹아 있다.

오늘도 시인은  전선을 따라 움직이는 행군의 대열에 섞여 있는데, 도중에 마침 중원으로 돌아가는 사신일행과 만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눌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를 보자 내내 가슴 먹먹하게 담고 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나온다.

행군하는 말 위에 타고 있는지라 글 몇 줄 써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급한 대로 말로나마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 마디가 헤아릴 수 없이 무겁다.  〈새빛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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