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6)

서림사의 벽에 쓰다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嶺側成峰)
원근고저각부동(遠近高低各不同)
불식려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
지연신채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

앞에서 보면 고개를 이루고 옆에서 보면 봉우리가 되는데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각기 다르네.
여산의 참 면모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이 몸이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지.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참모습에 대해 무관심해질 때가 많다.
고단한 일과 생각 없는 휴식의 반복이 자신의 삶을 무미건조한 쳇바퀴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끌어들이고 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사실을 깨달아본들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기 합리화에 너무 익숙해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한시 가운데 하나로, 송나라 때 동파선생(東坡先生) 소식(蘇軾)이 지은 ‘서림사의 벽에 쓰다’라는 작품이다.

서림사(西林寺)는 여산(廬山) 의 북쪽 산기슭에 있던 절이다. 여산은 예부터 절경을 많이 품고 있어서 많은 문인의 발길을 끌었고, 이 때문에 이백(李白)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와 같은 걸작이 나오기도 했다

이백의 시가 장쾌한 폭포를 품은 여산의 아픔다움을 호방하게 노래했다면, 소식의 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막측한 여산의 모습이 일깨우는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특히 소식의 시 마지막 두 구절은 인간의 인식에 관한 관점의 한계를 적절히 비유하고 있다.

산속에 있기 때문에 그 산의 객관적인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얘기는 그대로 인생살이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회의 삶,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는 나름의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올바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현존하는 삶이란 늘 불확실성의 연속이며, 미래는 언제나 모호하기만 하다. 그런데 산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내 시선을 산의 바깥으로 끌어내는 초월적인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산과 내가 진정한 하나가 된다면 이런저런 잣대로 재보고 평가하지 않더라도 그 산의 실체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빛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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