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책임 배상·기간 등은 법과 제도에 문제
‘갑·을 대치 관계’로 몰아 결국 약자만 피해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 필요

우스갯소리로 ‘을 전성시대’가 왔다는 세상이다. 약자가 빛을 발하는 시대가 정말 왔을까? 필자 눈에는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하여 한풀이식 주장으로만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보다 논리적 사고보다 목소리 큰 주장만으로는 또 다른 대치 상황만 만들어낼 뿐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피해는 약자에게로 전달된다. 불합리하기로는 강자로 취급받는 ‘갑’도 슈퍼 갑에게 피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다.

건설공사 하자책임과 배상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자. 지난 6월19일부터 시행에 돌입한 집합건물법은 하자에 관해 입주자, 시행사, 원도급사, 하도급사 간에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분쟁의 소지인 하자는 국어사전 의미로는 ‘흠’이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법률적으로는 당사자 또는 법이 예기한 상태나 성질이 결여되어 있는 일로 정의되어 있다. 국가계약법 내 공사계약일반조건 제33조(하자보수)는 하자를 정의하기보다 책임과 배상에 관한 내용만 있다. 국제표준계약으로 통용되는 FIDIC 제11조(하자책임)에도 잔여공사의 완료 및 하자보수에 대한 조항이 따로 정립되어 있다.

법률적 해석에는 법 혹은 당사자의 판단을 중요시 한다는 측면에서 주관적 판단이다. 국계법 계약조건에도 사용자 혹은 발주자의 통보를 일방적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처럼 해석된다.

같은 계약조건임에도 FIDIC 조항은 건설공사의 연장선으로 본다. 발주자가 공사 목적물 인수 시에 확인서에 명기된 모든 미완성 책임을 이행하는 것을 하자보수로 정의한 것이다. 국계법과 가장 큰 차이는 하자를 공사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지 혹은 사용기간을 포함할 것인지에 있다. 국제계약은 공사의 연장선으로 보기 때문에 하자기간을 통상 1년으로 하며 최대 2년을 넘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법은 하자보증 기간을 10년까지 연장시켜 놓았다.

법과 제도는 기술기준을 앞서갈 수 없다. 계약은 법과 제도를 앞서갈 수 없다. 기술기준이 가장 먼저다. 기술기준은 국가 및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선진국의 설계기준이 신흥국보다 높은 것과 같다. 소득수준 5만불 국가의 기술기준을 1000달러이하 국가의 기술기준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하자보수에 대한 책임과 처리비용에 관한 예를 들어보자.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크랙(균열) 문제다. 유사한 문제를 법정에서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렸다. 첫 번째 경우는 하도급사인 전문공사업체에게 100% 책임을 물렸고, 두 번째의 경우는 원도급사의 책임을 85%로 규정했다. 유사한 경우지만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은 기술기준과 법, 그리고 계약이 서로 선·후적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자를 공사의 연장으로 보는 것과 사용의 연장으로 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사의 연장은 재료, 구조, 시공 등을 하자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사용의 연장으로 보면 ‘사용자’가 추가되어야 한다. 공사는 계약자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묻지만, 사용은 계약자와 사용자 쌍방간의 과실 여부를 먼저 확인한 후 책임을 규명한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공사 중 하자는 설계기준 및 시공기준 준수 여부만을 따지지만, 하자 보증기간을 사용기간까지 연장할 경우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법과 제도는 기술적으로 우선 수용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한 후에 만들어진다. 기술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거나 개정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추가 비용도 동시에 다뤄지게 된다. 기술기준을 기반으로 한 법과 제도는 공공공사 계약의 기준이 된다. 국내 현실은 하자에 대한 해석과 계약적인 내용, 그리고 하자 보증기간 등이 글로벌 표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사용자 혹은 발주자의 일방적 해석에 따라 시공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비용 지불을 하게 만들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로 피해가 전가되는 구조다.

상식적인 논리가 배제된 현재와 같은 해석은 본질과 다르게 ‘갑·을’ 간 대치적 관계로 몰아가는 수밖에 없다. 머리는 선진국 수준에 있지만 상응하는 대가 지불이 배제되어 있는 현 상태는 책임 전가 논쟁만 가속시킬 뿐이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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