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9)

정원에 나들이 갔다가 들어가지 않음

응련극치인창태(應憐屐齒印蒼苔)
소구시비구불개(小扣柴扉久不開)
춘색만원관부주(春色滿園關不住)
일지홍행출장래(一枝紅杏出墻來)
 
나막신 바닥 푸른 이끼에 찍히는 게 안타까운 듯
사립문 슬쩍 두드려도 한참 동안 열리지 않네.
정원 가득한 봄 및 가둬둘 수 없어
빨간 살구꽃 한 가지 담 밖으로 나왔네.
 
철마다 유원지나 명승지는 사람들의 발길에 몸살을 앓는다. 산을 깎고 도로를 닦아 주차장이 된 입구는 숲과 짐승들의 보금자리를 없애 버렸고, 등산로나 산책로는 굳이 포장하지 않아도 단단히 다져져 있으며, 숲 그늘이나 골짜기 구석처럼 으슥한 곳에는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다.
 
제 즐거움과 편안함만 찾는 사람들의 이기심은 평지뿐만 아니라 산과 강까지 죄책감 없이 오염시키고 훼손시킨다. 짜증스러운 인파를 피해 호시절이 다 지나서야 그런 곳을 들러보면, 곳곳에 널린 자연의 상처가 더욱 선명하게 망막을 찌른다.
 
시는 남송 대의 섭소옹이 쓴 ‘정원에 나들이 갔다가 들어가지 않음’이다. 사립문이 달린 작은 정원은 주인의 섬세한 손길과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고즈넉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봄이 되자 그곳은 파릇한 풀과 새싹, 이끼를 배경으로 색색의 꽃이 피어나 눈부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사립문을 두드리는 나들이객도, 이끼 하나의 생명까지 아끼는 정원의 주인도 그 아름다운 조화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
 
방문객을 나 몰라라 하는 주인의 태도는 언뜻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혼자만 누리려는 욕심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려 깊은 나들이객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심 조금은 서운하기도 한 나들이객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담 밖으로 빨간 살구꽃 가지 하나가 고개를 내밀어 담 안의 풍성한 풍경을 대신 음미하게 해 준다.
 
이 짧은 시에는 나들이객들이 배워야 할 풍부한 교훈이 담겨 있다. 짧은 나들이로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욕심에 오랜 시간 그것을 가꾼 정원 주인, 조물주의 정성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들이객의 눈에는 그저 잘 가꿔진 화단의 나무와 꽃들만 비치겠지만 정원 주인의 마음에는 그것들과 어울리는 잡초 한 포기, 이끼 하나까지 소중하기 때문이다. <새빛출판사 제공>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