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분쟁에서 판사는 전문기관 의견에 의존
기술자는 여러 입장 사이서 자존심 큰 상처   
기술자의 주체적 노력이 아름다운 건축 열쇠

지금 건설 시장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발굴이 어려운 실정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새로운 건축을 위한 계획도 점차 줄어들면서 우리 기술자들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시장 창출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기업과 기술자의 마음을 흔드는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건축물 하자에 대한 법적 소송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면서 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건축시설물 하자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어제 오늘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건설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법적 소송 분쟁도 흔히 있기마련이다.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사안이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법원으로부터 법적 판단을 위한 기술적 ‘사실조회’를 요청받아 그 내용을 조사해 회보서를 작성하고 있다.

‘기술자의 판단과 판사의 판단’ 어느 쪽이 옳을까. 어느 쪽이 합당한가. 송사에는 원고와 피고가 존재한다. 건설 분야에서는 대체로 기업과 기술자는 피고 측에 서게 되고, 건축주와 사용자, 입주자 등이 원고 측에 선다. 즉, 건축물 시설물의 하자 등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민원과 소송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가 2~3년의 지루한 분쟁과 기술적 책임 논쟁으로 시간을 끌다가, 소송으로 이어지고, 법원에서는 판결의 기술적 판단을 학계 등의 전문가 의견을 들어 판결을 내린다. 여기에서 활용되는 것이 ‘사실조회 회보서’이다.

상황을 살펴보면, 기업이 승리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업은 하자를 고쳐 주거나,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건설 기업에 있어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가 같은 현상이다. 민원 및 소송이 중점적으로 발생하는 시기는 준공 후 입주하는 과정이나, 또한 법적 하자보증 기간이 종료하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도 문제지만, 해당 하자 현상에 대한 기술적 판단의 오류에 있다. 분쟁 초기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며, 사용자나 입주자는 큰 피해를 보고 있으니 책임지라는 주장이다.

결국, 기업이나 기술자가 쉽게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니, 소송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술자는 회사원의 입장에서 잘못을 인정하자니 회사가 큰 손실을 보게 되므로 적절한 기술적 논리로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고, 기술자가 아닌 일반 사용자나 입주민은 눈에 보이는 하자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기술자에게 화를 내며, 고성이 오가게 된다.

여기서 판사가 보는 눈은 또 다르다.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술자가 기업 측의 입장이 아니라, 사용자나 입주민 측 입장이라면 그의 판단과 주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누수나 하자는 당연히 기업의 시공 잘못에 의한 것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술자가 상황에 따라 이중적 입장에 놓이는 경우를 보고 판사는 헷갈릴 수밖에 없고, 그러니 피고 입장의 기술자 의견보다 제3의 객관적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학회 등 전문기관의 의견을 통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학회 등 전문기관에 속한 사람도 기술자다. 결국 기술자가 기술자를 재판단하는 것.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기술자는 자존심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 기업에 속한 기술자는 회사의 구성원으로 회사에 누를 끼칠 수가 없다 보니 기술자로서의 정확한 판단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기업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가 새로운 수주를 통해 들어오는 돈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소송 등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기업들이 가진 고질적, 병폐적 사안으로 기업 내부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건설 활황기 시절에 많은 수주 물량으로 엄청나게 들어오던 공사 대금의 막대한 규모로 인해 지어놓은 건축물, 주택에서 새나가는 하자 처리 비용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기술자의 판단과 결정이 기업의 수익 구조를 결정하게 되고, 그 기업의 미래 발전을 장담하게 된다. 설계 단계에서, 시공 단계에서, 유지관리 단계에서 기술자가 확신하는 정확한 판단과 실천이, 그 자존심이 미래의 아름다운 건설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오상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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