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은 도제·복제→기술창조로 진입
소비자 눈높이맞춘 ‘기술+가격’ 조합 필수
인식을 바꾸면 세계 건설영토 아직도 넓어

값어치 있는 건설기술이란 용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먼저 발주자 혹은 수요자 입장이다. 지불한 값(price)에 비해 얻는 소득 혹은 부가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기술을 공급하는 입장은 투입한 원가(cost)에 비해 수익이 높음을 의미한다. 기술이 돈이 된다는 뜻이다.

공통적 의미는 기대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값어치는 영어로 ‘밸류(value)’다.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것은 값어치가 높다고 판단될 때다. 반대로 공급자는 원가에 비해 수익이 높다고 판단할 때 시장(입찰)에 내놓는다.

기술의 값어치를 따질 때 공통요소는 원가(cost)다. 다만 원가를 보는 시각에 경제성으로 보는 것과 단지 값으로 보는 것에 차이가 있다. 기술이 높고 또 경제성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값어치가 나가는 기술이다. 반대로 첨단기술이지만 값이 비싸다면 수요자의 외면을 받는다. 손에 든 기술이지만 돈이 되지 않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건설기술이라고 예외는 없다.

기술의 값어치를 지배하는 것은 ‘기술’인지 ‘가격’인지를 따져보자. 만약 기술이 지배한다면 해외건설 시장을 선진기업들이 싹쓸이(?)해야 한다. 반대로 가격이 지배한다면 인도나 중국계 기업들이 싹쓸이 하는 게 당연하다. 현실은 기술이나 가격이 시장을 좌우하는 게 아니다. 값어치 있는 기술이 지배하는 것이 시장 원리다.

한국의 글로벌 챔피언 산업 중 하나인 조선과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 조선은 세계 최강이다. 자동차도 세계 5위권이다. 한국 조선을 대표하는 건조기술은 기가불럭공법의 자유로운 구사다. 자동차를 대표하는 기술은 조립플랫폼 공유와 품질보증 기간 등이다. 두 산업 모두가 공급자보다 소비자에게 값어치를 가져다 주는 핵심 기술이다.

한국 건설은 기술의 도제와 복제, 기술자립, 그리고 기술경쟁 시대를 지나 지금은 기술창조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도제방식을 통해 남의 기술을 흉내 내는 시대에서 스스로 자립하겠다는 시대를 우리는 거쳐 왔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기술경쟁 시대를 외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기술경쟁 시대라 주장한다.

필자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창조기술이란 값어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시장은 가격이나 첨단기술이 아닌 값어치 있는 기술 전성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값어치 있는 건설기술을 미국의 어느 기업의 예로 들어보자.

중동전쟁으로 파괴된 유전을 최단시간에 복구할 수 있는 회사는 이미 어떤 회사가 후보라는 것쯤은 상식화되어 있다.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붕괴 당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빨리 건물 잔해를 치워야 할 절박한 시기에 뉴욕시장은 가장 먼저 이 회사 회장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초대형 태풍 카타리나로 인해 인명손실이 5000명을 넘기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을 위한 임시 숙소 건립이 초단 시간 내 필요할 때도 어김없이 이 회사를 찾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공기단축 기술이라는 값어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국건설이 가질 수 있는 값어치 나가는 기술을 생각해 본다. 값어치 있는 건설기술이란 기본적으로 품질과 성능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가장 빨리 가장 경제적인 기술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 판단으로는 향후에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경쟁력은 값어치 있는 기술이다. 국내 시장에도 민간자본의 역할이 커지기 때문에 대량 물량 복제가 지배하는 공공재 시대보다 차별성과 고유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값어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소득 수준, 즉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1인당 소득수준이 연간 200달러 미만 국가와 사회에 우리나라 도로기술 수준은 기술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져 값어치가 없다. 반대로 국내 도로기술 수준으로 미국도로 시장 진입은 품질과 성능이 떨어져 값어치가 없다. 상품을 필요로 하는 상대방의 눈높이를 헤아릴 수 있는 변별력과 눈높이에 맞춘 기술과 가격의 조합으로 값어치 있는 기술을 창조해야 한다.

건설 상품의 값어치는 현장 시공보다 전략과 엔지니어링 기술력의 영향이 훨씬 크다. 엔지니어링의 부가가치를 도면이나 시방서 생산 가격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상품에서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값어치 있는 기술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한국건설이 값어치 있는 기술을 보유한다면 일거리나 수익은 걱정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세계 건설영토는 넓고 크다. 기술과 가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 한국건설이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챔피언 산업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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