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9)

왕사세여모 往事細如毛
명명몽중기 明明夢中記
조과욕축유 操戈欲逐儒
차언수유리 此言殊有理
사실혹망처 徙室或忘妻
비도우어이 非徒偶語爾
일병금기년 一病今幾年
식기승약이 息機勝藥餌

마음을 쉬는 것이 약보다 낫네
이미 지나간 아주 작은 일들도
꿈속에선 선명하게 생각이 나네.
건망증 고쳐 준 사람 창을 들고 쫓아냈다는 그 말에 참으로 일리가 있네.
아내를 놔두고 이사를 했다는 것도
우연히 한 말만은 아닐 것이네.
몇 년간 병든 채로 지내온 지금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후까지도 꿈속에서는 여전히 제한된 시간 안에 시험 문제를 못 풀어 쩔쩔맨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잊혀져도 괜찮을 기억들이 오래 남아 꿈속에까지 나타나곤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기억 장치는 내가 기억하기를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와는 별 상관없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잊고 싶기도 하고 잊고 지낼 수도 있었던 기억을 누군가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을 겪는다면 창을 들고 그를 쫓아냈다는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면 복잡해지고 복잡해지면 괴로운 세상, 모르고 사는 게 약이었는데, 그런 맘은 모른 채 병을 고친다며 번뇌의 바다에 다시 빠뜨렸으니 분하고 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은 선생은 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해지는 괴로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 지나치다 싶을 때에는 생각을 쉬는 것보다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옳으니 그르니, 이로우니 해로우니, 나니 너니, 좋으니 싫으니를 따지는 기심을 내려놓고 정신을 온전히 쉬게 한 뒤라야 시비와 이해와 관계와 지향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한국고전번역원 한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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