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13)

유물래래부진래 有物來來不盡來
래재진처우종래 來纔盡處又從來
래래본자래무시 來來本自來無始
위문군종하소래 爲問君從何所來

존재가 나고 또 나도 다함이 없어
다하였나 싶은 때에 어디선가 또 나오네.
시작도 없이 나고 또 나거늘
그대는 아는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화담(花潭) 서경덕이 우주 만물을 형성하는 본원에 대해 탐구한 시입니다.

화담은 사물을 관찰하고 이치를 궁구하기를 좋아했는데, 이와 관련한 어린 시절의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부모가 나물을 캐 오라고 하였는데, 매일같이 늦게 돌아오면서도 광주리를 다 못 채웠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아들에게 묻자, “나물을 캐러 갔을 적에 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하루는 땅에서 한 치, 다음 날엔 땅에서 두 치, 또 그 다음 날엔 땅에서 세 치 뜨더니, 점차 위로 날아갔습니다. 제가 이 새가 나는 것을 보고 그 이치를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늦게 돌아오게 되었고, 광주리도 채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18세에 ‘대학’을 읽고, “아는 것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마음에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화담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못한다면 독서를 한들 무엇하겠는가?”라고 하고, 천지 만물의 명칭을 써서 벽에 붙여 두고, 날마다 온통 여기에만 정신을 쏟으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였습니다.

화담 선생은 후에 이러한 공부 방법을 두고 어려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못해 헛된 노력을 했노라며, 이러한 공부 방법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화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데 치중했던 화담의 학문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수가 존재가 생겨나는 곳에 대한 것이라면, 두 번째 수는 존재가 돌아가는 곳에 대한 것입니다. 각각 생겨나는 곳과 돌아가는 곳이라고 하여 말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한 바탕인 존재의 뿌리에 대해 화두를 던진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한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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