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준의 하드웨어·통신기술을 가진 우리가  에너지관리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키면  매우 훌륭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만들고  다소비 에너지 산업을 대체할 수 있다.”

전력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력공급을 확대하거나 수요를 줄여야 한다. 전력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경제·환경적 측면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결국 수요를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을 해야 전력수요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 처방이 나온다. 전기를 어디에서, 언제, 얼마나 쓰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면 일정 기간의 전기 사용량 관리는 물론, 전력 경보가 발령되는 비상상황에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즉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전력수요에 대해 맞춤형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불필요한 수요를 억제해서 꼭 필요한 시기·분야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혹한기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의 전력소비를 줄여 꼭 필요한 사무실 등에 난방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건물의 전력소비를 계획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획일적인 전력수요 관리로 발생하는 전력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는 전력수요를 줄여 에너지 생산 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발전생산 시설의 확장이 필요 없어 쾌적한 국토환경 조성에 기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은 전력 등 에너지 수요의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도구다.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활용하기 충분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이 없다. 기술 수준도 크게 낙후되어 있다. 예를 든다면 건물에 적용되는 에너지관리시스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건물 자동화관리시스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아직 20% 수준에 불과하다.

에너지관리시스템은 의료시스템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간다. 발병 여부에 대한 의사의 본격적인 진료에 앞서 체온, 혈압, 맥박 등 간단한 사전 진단을 받는다. 필요시 혈액검사나 방사선 촬영 등 추가적인 정밀진단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분석결과를 종합해 의사는 환자의 발병 여부와 상태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한다. 분석결과에 따라 환자에게 처방전 혹은 주사를 주거나 수술을 권유하기도 한다.

이와 유사하게, 건물의 경우 설비나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건물 운영자는 제조회사 등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연락한다. 그 전문가는 먼저 설비나 장치의 운전기록을 확인하며 간단한 측정을 한다. 또 필요시 보다 정밀하고 복잡한 진단을 한다. 분석 및 진단결과에 따라 전문가는 운전이나 운영방법의 개선과 같은 간단한 조치를 취하거나, 일부 부품의 교체 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권유한다.

건물 이외의 가정이나 공장 또는 상가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의에 따라 진료과목이 다르듯이 대상으로 하는 적용 분야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의료 분야와 에너지관리 분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의료 분야는 환자나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전문의가 있는 반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에너지관리 전문가들은 찾기 어렵다.

이미 공장, 건물 그리고 주택에 다양한 자동화관리시스템이 보급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에너지관리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 에너지관리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에너지관리시스템은 기존 자동화관리시스템에 의료분야 전문의와 같은 에너지 관리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결합된 것이다.

국내 건물의 경우 경비·청소 분야와 함께 시설 관리업무도 전문업체에 위탁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최저가 입찰제도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저임금 인력이 고용되어 에너지관리를 포함한 시설관리업무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 또 시설관리 업무에서 발생되는 결과자료와 업무자의 경험이 제대로 축적되고 활용되지 못해 시설관리 업무의 서비스 품질 향상에 애로가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의료분야 전문의의 경험과 노하우에 해당되는 다양한 시설관리정보를 규칙화해 놓은 기존 자동화관리시스템과 결합된 에너지관리시스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이미 세계 수준의 정보화 분야 하드웨어·통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각 분야의 에너지관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킨다면 매우 훌륭한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에너지관리시스템의 활용을 통해 건물과 가정, 공장 또는 상가 등에서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거나 근로자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것 없이 에너지 수요관리가 가능해진다. 아울러 산업화 이후 효자산업 역할을 해 온 국내 다소비 에너지 산업을 대체하는 국가 신성장동력의 역할을 에너지관리시스템이 할 수 있다.

다만 아직 발전 초기단계에 있는 에너지관리시스템에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여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도입효과가 떨어지거나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제품의 보급으로 국민들이 크게 실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핵심기술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분야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충분한 운전·운영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지식정보화해야 한다. 또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고 계측제어, 전자통신, 기계전기, 운영관리 및 데이터관리 등 관련 분야의 유기적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우효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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