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용어에 ‘스테레오타입’ (stereo type)이라는 말이 있다. ‘매우 단순하고 일반화된 기호로 특정 사람이나 사물을 사회적으로 구분짓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부당한 동일시’(undue identification)라고 할 수 있다.

통상 ‘고정관념’으로 번역된다. 원래 이 용어는 인쇄기술에서 유래됐다. 어떤 활자체가 완성되면 그것으로 주물을 떠서 단단한 금속판을 주조하는데 그 금속판이 바로 스테레오타입이다. 스테레오타입은 반복적으로 많이 인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전적으로 ‘연속적으로 인쇄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월터 리프만은 1922년 발간된 ‘여론’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리프만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동이나 판단을 함에 있어 실제 현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형성된 이미지(고정관념)에 근거하는 경향을 보인다.

고정관념은 특정 집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실제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흑인은 게으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부지런한 흑인일지라도 게으른 사람으로 인식된다. 리프만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선 보고 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 다음에 본다”고 설파했다.

이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을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 효율성’과도 관련 있다. 모든 것을 새롭고 자세히 보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떤 유형이나 일반성에 의해서 파악하는 것보다 소모적이고, 바쁜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는 스테레오타입을 연상시키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온 나라가 9명의 꽃다운 젊은 대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경주 마리나리조트 붕괴사고의 충격에 빠져있던 지난달 중순 한 신문에 “붕괴된 체육관 ‘문제’… 영세 건설사가 75일 만에 준공, 외부 안전점검 한 번도 안 받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일 뿐 기자의 의견이나 생각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사 본문을 보기 전에 이미 제목에서 독자들은 ‘의도’를 읽게 된다. 기사가 게재된 당시는 붕괴원인 찾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세 건설사가 75일 만에 준공했다’는 제목은 독자들 머릿속에 잠재해 있던 ‘영세 시공사=부실시공’이라는 인식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제목엔 “붕괴된 체육관 ‘문제’…”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달려 있다. 기사의 제목은 ‘영세 건설사=부실 시공’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우리 현실에서 수많은 중소 건설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점차 붕괴사고의 원인이 드러나고 있다. 제설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감리도, 시공도 부실했던 총체적 인재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가 그렇다손 치더라도 미리 편견을 가지고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많은 중소 건설사들이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혹자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라고도 한다. 영세 건설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1차 책임은 건설사에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성실히 원칙과 규정을 지키며 책임시공을 하고 있는 건설사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업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때론 채찍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따뜻한 격려의 한 마디가 소중한 때다.     /김병국 내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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