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엄청난 절망감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2014년 4월16일 오전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는 우리가 소중한 가치로 여겨온 책임감, 희생정신, 배려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파렴치와 탐욕과 이기심과 무기력한 정부만이 있을 뿐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 승객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가장 먼저 구조선에 몸을 실었다.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은 어린 학생들이 물속에 잠기는데도 대부분의 ‘어른들’은 제 목숨 챙기기에 급급했다. 탐욕에 눈이 먼 해운사는 안전이 깡그리 무시된, 위험천만한 배를 바다로 내몰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내건 정부는 어떤가? 선체 대부분이 드러나 있던 배가 바닷속에 잠길 때까지 90여 분간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학생으로부터 최초로 신고를 접수한 해경 관계자는 ‘경도와 위도’를 물으며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런 가운데 꽃다운 학생들은 세월호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사고 수습 과정은 3류 국가의 모습에 불과했다.

세계 15위 경제대국, OECD 회원국 대한민국의 민낯은 이렇게 추악하고, 창피스런 모습이었다. 검경 수사와 대책 마련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머지않아 사고 보고서가 나오고, 제도가 정비되고, 매뉴얼이 작성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기대보다는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회의감이 앞선다. 매뉴얼이 없어 선장이 승객을 버렸나? 이미 20여 년 전 위도 페리호 사건 때 매뉴얼은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동안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역 참사 등 대형 재난이 터질 때마다 허술한 안전관리시스템을 지적하며 관련 조직과 제도를 정비해 왔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조직과 매뉴얼 타령을 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기본을 무시하고, 규칙을 우습게 아는 사회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세월호는 이어질 것이다. 규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융통성없는 사람으로 비웃음 받는 반면, 위법과 편법과 반칙에 능숙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에서 매뉴얼은 휴짓조각에 불과하고, 재난기구는 전시용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모든 재난은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고 재앙이 커지는 원인도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기본을 무시하고 기본을 지키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바꿔 나가야 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수십 년 켜켜이 쌓여온 폐단이 몇몇 매뉴얼을 만들고, 법을 바꾼다고 사라질까? 별로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반성하고 기본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다. 작지만 새벽 출근길 빨간신호등을 지키고, 늦은 저녁 비어 있는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빠른 길보다는 바른길을 좇고, 수완 좋은 사람보단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존중하련다. 우리 아들, 딸에게 “세상엔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하늘나라로 간 어린 영혼들에 사죄할 생각이다.   /김병국 내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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