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대표해 사회 혼란을 조정하고 공정한 법을 만드는 정치권의 솔선수범이
 국민의 열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심심치 않게 보는 뉴스 한 토막이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사회적 배려대상자의 입주를 기존 입주민들이 바리케이드로 막고는 횡포를 부린다.

건설사가 미분양된 아파트를 할인처분하려 하자 먼저 분양받은 사람들이 분양대금 일부를 돌려달라며 시위을 한다. 보통 시위가 아니라 분신까지 하며 건설사를 압박한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상황이니 건설사 등 관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자원 하나 없는 땅에서 타고난 근면과 성실로 억척같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제법 돈도 만지게 되면서 욕심도 생겼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온몸을 바쳤지만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다정한 이웃도 의지할 어르신도 인생의 스승도 없어졌고 마음 졸이는 연애도 가슴 적시는 낭만도 사라졌다. 돈으로 치장된 이기심 앞에는 승자만이 존재하고 낙오자는 무한 패배의식에 무차별적 저항을 쏟아낸다.

눈이 핑핑 도는 정보화 시대가 왔건만 여전히 출신을 따지고 편가르기를 하면서 이 기운을 오롯이 부정부패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남아 있는 모든 열정을 나와 내 가족의 이기심을 실현하는 데만 불사른다.

사정이 이렇다면 위의 뉴스처럼 시위하고 차별하는게 눈살 찌푸릴 일이 아니라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고 나라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이순신 장군의 애국을 그린 영화 ‘명량’은 연일 입장객 신기록행진을 하고 있다. 사극 ‘정도전’의 시청률은 폭발적이었다.

위기와 혼란에 맞서 극복하는 과정의 감동과 전율이 몸을 타고 흐른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에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뭉클함이 있다. 아직 살아 꿈틀대는 무언가의 뜨거움을 느낀다. 정의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기꺼이 행동할 준비도 되어 있다. 내 가족과 일터를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줄 알고 몰래 선행을 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고요하였으되 흥을 아는 민족이라 좋아하는 가락에는 어깨춤이 절로 나고, 좋아하는 놀이에는 한마음으로 열광을 한다. 우리 가슴 한편에는 이렇게 또 다른 열정이 살아 있는 것이다.

위 두 현상에서 나타나는 열정을 동시에 설명하기에는 많은 복잡한 이론과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시민이자 공무를 맡은 한 사람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부정적 열정을 긍정의 에너지로 만들어 내는 묘안은 없는 것인가? 열정의 부정적 표출도 결국 학습된 것이라면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 상처를 덜 남기고 극복할 방안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이, 돈에 대한 집착을 넘어 보다 더 다양한 가치의 추구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어떻게 모색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가정과 학교, 직장, 사회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고 시간을 요하는 것이겠지만,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까운 것부터 찾으라고 한다면 정치계 등 사회지도층의 민주와 법치에 대한 솔선수범에서 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진부한 것 같지만 민주와 법치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는 적절하고 확실한 처방이 아닌가 한다.  국민을 대표하여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공정한 법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정치야 말로 국민의 열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과정에 있는 대표들의 일거수일투족이나 토론하는 모습, 결정을 이끌어내는 솜씨 등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보고 배우며 흉내를 낸다. 부정을 획책하고 책임회피나 하려는 지도층의 모습이 미치는 파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준법하라고 국민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먼저 준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고, 정의롭고 희생하라고 훈계하기보다는 먼저 정의로운 모습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민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으로 80년대 말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경험과 90년대 말 금융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제는 정치계를 비롯한 지도층이 그에 대한 화답을 할 차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수 법제처 법령정보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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