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7만9342㎡)를 인수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유는 감정가 3조3346억원의 3배를 넘는 10조5500억원이라는 입찰가 때문. 통 큰 베팅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을 제치고 입찰을 따내기는 했는데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린다.

땅 값과 면적으로 간접적 비교가 가능한 게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부지다. 2007년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 44만2000㎡를 8조원에 낙찰받았다. 용산이 거주의 편리성과 유동인구 면에서 강남에 밀리는 건 엄연한 사실.

하지만 향후 서울 부동산시장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때 용산은 서울의 중심에다 한강이 남쪽에 펼쳐져 있어 제대로 된 개발만 이뤄지면 강남 못지 않은 잠재력을 내포한 곳이다. 용산개발사업 부지의 3.3㎡ 당 가격은 6000만원. 특히 당시는 국내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로 치솟았던 때다.

한전 부지의 3.3㎡당 가격은 4억3879만원. 상이한 부동산경기와 미래가치 등을 비교할 때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전 부지 가격이 용산개발사업지구보다 7배가 높다는 사실에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업계는 입찰가를 4조~5조원으로 예상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어차피 한전 부지를 사는 돈은 국가로 갈 것이니 나쁜 일도 아니니 ‘과감하게’ 베팅을 하라고 지시를 해서 만들어진 결과”라며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윤을 내 먹고 사는 기업이 공공기관이 보유한 부지를 구입하면 돈이 국가로 유입된다는 논리로 터무니 없이 비싼 값으로 매입한다는 것은 기업 생리상 앞뒤가 안 맞다.

일부에서는 현대차가 지난 6∼7년간 성수동 삼표부지에 110층짜리 사옥을 지으려다 실패한 기회비용,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 강남의 랜드마크라는 상징성 등을 감안하면 무리한 금액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승자의 저주’ 우려에 뒤늦게 모범답안을 만들어 낸 분위기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낙찰 당일인 18일 현대자동차그룹 주가는 9% 이상 하락하며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또 일부에서는 이사회가 오너의 잘못된 투자를 감시하지 못해 손해가 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사회를 상대로 배임 소송을 준비하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삼성전자 입찰 가격으로, 이는 삼성그룹과 입찰 시스템(온비드)을 운영 중인 자산관리공사(캠코) 담당자, 그리고 한전 관계자들만 알고 있다.

시중에는 5조원 아니면 9조원이라는 설이 주로 거론된다. 9조원은 삼성전자도 한전 부지 매입을 위해 현대자동차그룹 못지 않게 전사적으로 실탄을 사용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설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입찰가격이 크게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는 논거를 제공해 준다.

반면 5조원은 9조원을 써 낸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 그룹을 배 아프게 하기 위해 고의로 흘리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23일 삼성 고위 관계자가 입찰가를 약 4조7000억원으로 밝혔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삼성은 이에 대해 “여러 억측 중 하나일 뿐”이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세상사 비밀이 없다 보니 언젠가 삼성전자의 입찰가격도 드러날 것이다. 제 값보다 더 비싸게 부지를 판 한전과 수천억원의 세금이 들어오는 서울시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이 웃을 수 있을지 그 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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