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구를 만나면 학원, 학교 등 자식 공부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 만나는 친구들은 딱 두 가지를 걱정하다 집에 간다. 자식 공부라면 만사 제쳐놓던 한국 부모의 유별난 교육열을 잠재운 것. 그것은 ‘미친’ 전셋값과 바닥 모르고 떨어지는 주식이다.

가장 최근에 만난 두 친구도 그랬다. 번듯한 대기업에서 꽤 ‘잘나가는’ 한 친구는 12월에 만기인 전세금을 1억원이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해외 근무하다 2년 전 돌아와 4억5000만원에 얻은 서울 강남구의 전셋집이다.

일단 “시세(5억1000만원)보다도 지나치게 높은 것 같으니 다시 생각해 보시고 연락 달라”했더니 “전세 들어오려는 사람은 많다”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단다. 한숨을 푹푹 쉬는 친구 곁에서 다른 친구는 “나는 아직 전세 만기가 1년 넘게 남아서 괜찮은데, 아침마다 떨어지는 주가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며 덩달아 한숨을 내뱉었다.

답이 없는 현실이다. 살아날 듯 살아날 듯 몸부림치던 중산·서민층이 다시 위기에 처했다. 우려했던 일이다. 정부의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이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것 같아 우울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지난해 1월 54.6%에서 지속 상승해 지난 9월에는 65%까지 도달했다. 서울에서 밀려난 ‘전세 난민’ 행렬에 이달 들어 경기도에서도 전세가율이 70%를 돌파하는 지역이 늘었다. 화성 동탄1신도시의 경우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서 무려 9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13일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서민주거 문제가 거론됐다. 그런데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발언이 기가 막혔다. 서 장관은 “전세가 증가율이 지난해 수준에 비해 올해는 낮고, 월세의 경우도 올해는 마이너스(하락)라 임차인의 전체적인 웰페어(복지) 수준은 오히려 증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민주거복지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는 장관의 답변치고는 뭔가 이상했다. 지금 저축 이자만 생각해도 한 달에 수십만원씩 나가는 월세가 서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주가 폭락에 대응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10월16일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주식시장은 부총리 바뀐다고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게 아니다. 기업실적에 따라 하는 거다. 지금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이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상황 반영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양 수단을 총동원해 경기를 살리려는 이른바 ‘초이(최경환)노믹스’는 이 효과 없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주택 거래시장은 완연한 소강상태다. 부동산·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까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최 부총리가 마치 ‘자기 부정’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두 장관께 부탁드린다. 실패는 하루 빨리 인정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 그래야 새 길을 모색할 시간을 하루 더 벌 수 있다. 기존 대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지, 아니면 추가·보완책이면 충분한지부터 서둘러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무고한 서민들이 더 이상 집과 자산가치 하락 걱정을 하지 않는 나라,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 공언한 ‘국민행복’ 국가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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