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날이 있어?”
식당에서 밥을 먹다 흘깃 TV를 보던 한 손님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픽 짓는다. TV는 ‘51회 저축의 날’ 행사를 비추고 있다. 배우 김희애, 방송인 서경석, 김흥국, 변정수 씨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연예인이 올해 수상자다.

이제는 ‘저축’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어 보인다. 금리를 내려 빚을 많이 빌려가도록 권하는 사회가 돼서다. 가뜩이나 몇 없던 각종 저축의 세제혜택마저 없앴다. 올해 세법을 개정해 세금우대종합저축에서 세제혜택이 사라졌다. 7개 시중은행에만 764만명이 가입했던 통장이었다. 정부는 저축보다 세금을 택했다.

저축의 날은 1964년 지정됐다. 9월25일이라는 날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지정했다.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빌려줄 돈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학교금고를 통해 저축을 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가계순저축률(가계저축÷가처분소득)은 4.5%다. 1988년 24.7%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다. 30여 년 전은 저축하면 돈이 됐다. 예금금리는 10%가 넘었고, 정부도 재형저축상품을 내놓아 국민들의 목돈을 불려 줬다. 마땅한 금융상품이 없던 시대, 저축은 또순이의 상징이기도 했다.

저축량이 많으면 은행들의 조달금리가 싸진다. 기업은 싸게 돈을 빌려 설비에 투자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 물건가격이 떨어진다. 소비자가 물건을 소비하면서 경기가 좋아진다. 자금조달 방법이 많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특히 국민들의 저축이 중요하다. 금융기관들이 돈을 마련하려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면 높은 금리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높았던 가계저축률은 한국경제를 이끈 견인차였다.

저축은 부동산에도 효자였다. 한 푼 두 푼 모아 목돈을 만들어 그 돈으로 전세자금을 마련했다. 전세금은 추후 집을 사는 종잣돈이 됐다. 몇해 전세로 살다 돈을 더 모아 집을 사는 것이 내 집 마련의 정석이었다. 종잣돈이 있으니 대출을 한다 해도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회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유자금이 집으로 몰려들었고, 집값이 큰폭으로 상승했다. 어지간한 대출을 끼지 않고는 집 사기가 어려워졌다. 교육비와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여윳돈이 줄어들었다. 임금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다.

반면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여유자금이 생기자 은행빚을 줄이고 유보자금을 늘려갔다. 근로자가 빈궁하니 소비가 줄어들었다. 내수침체는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부동산침체의 근본원인은 경기침체다.

가계부채는 이미 1000조원이 넘었다. 많은 빚을 진 가정이 소비를 잘 할 리 없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계빚에 대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리스크 관리 차원의 말이고, 경제는 이미 골병이 들고 있다. 가계가 원활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가계-기업-정부’로 이어지는 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리를 2.0%로 내렸다. 건국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목표는 부동산 경기진작이었다. 금리를 내리면 과연 부동산이 살아날까. 지금까지 경험을 비춘다면 “예”지만 어디까지나 고성장 시대의 얘기다. ‘저성장 시대’라는 변수를 집어넣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전세값 폭등이 대표적이다. 금리인하는 가뜩이나 불안하던 전세시장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집주인들은 은행에 예치한 전세수입의 이자소득이 줄어들자 전세값을 올려 버렸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값은 3억원을 넘어섰고, 이 중 20%는 빚이다. 집을 사려면 또 빚을 내야 한다. 전세가율이 80%에 육박해도 선뜻 집을 사기 힘든 이유다.

집값은 젊은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빚만 권해서는 부동산경기를 살릴 수 없다. 종잣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금리는 양날의 칼이 있다. 저축을 위해서도 적정금리를 생각할 때다. 제로금리는 답이 될 수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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