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들어갈 일이라고 생각도 안 해 봤다. 정부는 전·월세 대책을 내놓는 차원에서 민간을 끌어들이겠다고 하지만, 민간은 사기업이기 때문에 공익사업으로 접근할 수 없다”

정부가 내년 초 발표를 목표로 윤곽을 짜고 있는 기업형 민간임대에 대한 한 대형건설사 간부의 반응이다. 주거 트랜드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 민간 임대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25일 국무회의에서 “시장 이익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면서 입주자가 장기간 저렴한 임차료로 거주할 수 있도록 기업형 민간 임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게 계기였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12월1일 간담회에서 “대기업들이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정부는 토지매입비를 저리 융자하거나 임대주택을 지을 때 빌리는 국민주택기금 이자율을 낮춰주는 방안, 또 5년 또는 10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할 때 분양가의 기준이 되는 표준건축비를 올려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임대 사업을 하는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지원책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시큰둥하다. 임대 주택이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만난 A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민간 임대 시장을 연다는 것과 실제 대형사가 들어가는 것은 별개”라고 선을 그은 뒤 “임대 아파트는 회사 자산으로 끌고 가는 것이라 재무적으로 검토해 봐야 하고, 아직은 임대 시장이 새 먹거리 창출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단계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수요가 있는 지역의 오피스텔과 같은 소형 주택을 제외하고는 임대를 통한 운영 수익이 분양수입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민간 건설사의 임대사업 진출은 실익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브랜드 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B사 관계자는 “임대 아파트를 지으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 기존 아파트 입주민이 난리가 난다”며 “현재 형성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게 앞으로 분양에서도 중요하다. 임대 아파트는 중견, 전문 건설업체에서 하는 것인데 왜 대형사를 끌어들이려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나마 민간 임대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회사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C사 관계자는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토지매입비에 대해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임대아파트는 관리비용 때문에 땅값이 일반 공동주택용지보다 30% 이상 저렴하지 않으면 사업에 뛰어들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D사 관계자는 “미임대 물량이 생기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에서 매입하는 식으로 사업 리스크를 보완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사는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 현재 기재부와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간소화하거나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것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의한 대규모 민간 임대 아파트 사업이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주택 임대차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만큼 기업도 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 정부가 이런 변화의 시기에 민간 임대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기를 망설이게 하는 갖가지 규제 혁파와 수익 보장 극대화를 위한 정부 발상의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한 때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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