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대한 냉소와 상호 불신 풍조 만연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괴감 깊어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가끔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한 번씩 질문을 던져 본다. ‘여러분 각자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제일 잘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다. 다들 생각해 보지만 답변이 잘 나오지 않는데 내가 정답을 얘기하면 금방 수긍한다. 정답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이다.

즉,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데는 자신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스스로의 자존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존감은 본인 각자가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지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사회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민주사회에서 국민 각자는 주권자로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국가는 국민의 생명,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부여받아 행사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라는 이념적·제도적 토대를 통해 더욱 공고히 유지될 수 있다. 결국 개인의 자존감은 민주사회에서 진정한 법치가 이루어지는 순간 극대화되는 조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존감에 손상을 주고 자존감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환경적인 요소까지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법치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사회현상 위주로 얘기해 보겠다.

우선 탈법적인 정치권력의 행사, 유전무죄 무전유죄 의식, 전관예우, 사회 곳곳에 만연한 적법절차의 무시, 관료의 부정부패, 님비의식 등은 사회적 병리현상이기도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아 자신이 이러한 현상의 피해자가 된다면 엄청난 자존감의 손상과 상실을 맛 볼 것이다. 즉 민주화된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가 라는 혼란으로 개인의 자존감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 역시 자존감의 위협을 느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고 법은 지키는 사람만 손해보고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극단적인 불신과 저항 등의 반사회적인 행태로 마침내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할 것이다. 법에 대한 냉소만 있고 서로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는 한 개인의 자존감은 무너지고 상처받고 삐뚤어진 자괴감으로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

개인의 자존감이 붕괴되어 민주적 가치가 손상되고 그 결과를 예측불가능하게 하는 이런 현상을 두고만 보아야 할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한결 살 만해졌다고는 하나 빈부격차의 심화, 물질만능사조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법치마저 무시되고 무너진다면 민주사회의 수호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법치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 뿐 아니라 가부장적인 유교 이념의 잔존이나 일제시대의 왜곡된 법치의식, 정치적 혼란과 성장 만능주의 등의 영향으로 진정한 법치의식의 발전이 물질적 성장보다 더딘 것도 사실이지만 현대에 와서까지 법치의 정착이 안된 것을 이러한 영향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법치주의의 발전은 정부가 국민에게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여 객관적 기준인 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그 근본이며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적 가치의 구현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법치의식의 정착을 위해서는 기본부터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개인적으로는 나의 자존감 못지 않게 상대방의 자존감도 존중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방과 사회를 염두에 둔 조화적인 개념이다. 가정에서든 학교, 직장에서든 이러한 법치의 기본을 먼저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적기관의 경우 적법절차를 지키고 국민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빈부격차나 사회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유리한 입장에 선 가진 사람이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준법의식을 가지고 적법한 절차를 존중하는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법치의식의 강조는 낡은 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사회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서로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법치의식이 건강하게 뿌리내리도록 각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형수 법제처 법령정보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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