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단가는 공법을 발주자가 정하는 방식이다
 설계회사 도움받아 예가 정해도 문제 많아
 건설업체에 시공방법 선택권 돌려줘
 기술경쟁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다”

공공공사에 의무적으로 도입된 실적공사비 제도 논란이 끝이 없어 보인다. 전면 도입 10년차를 맞이한 현재 실적공사비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적자공사의 주범, 저가낙찰로 인한 업체 피해, 실적 없는 실적공사비 등 불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해답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건설공사 원가산정방식과 실적공사비 제도에 대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적공사비는 공공공사 원가, 혹은 발주예정가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일방적 주장으로부터 도입됐다. 공공공사의 예정가격에 중대한 거품이 끼어 있어 국고를 낭비하면서까지 업체의 배를 불러줘야 하냐는 원색(?)적인 비난을 피해가는 수단으로 실적공사비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실적공사비가 이제는 업체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지목되고 있다.

건설은 서비스산업이 본질이며 주문자의 눈높이에 따라 공급가격이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 공급가격 산정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 즉 산업의 책임이자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셈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품셈을 개선하기보다 품셈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실적공사비 제도를 도입했다.

서비스 가격은 품질과 제공자의 공법에 따라 가변적이다. 발주자가 산정하는 예정가격은 단지 기대값에 불과한 근사치에 불과하다. 근사치는 서비스 구매를 위한 참고 자료일 뿐으로 선택의 일부일 뿐이다.

국내 공공공사의 예정가격은 근사치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뿐인 정답인 것처럼 적용이 의무화돼 있다. 논리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점이 내포되어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법보다 우선 피하고 보자는 자세가 대세다.

최근에 실적공사비에 대한 개선책으로 적용대상과 운영주체를 변경하는 방안을 내 놓았다. 실적공사비 제도를 운영은 하되 표준시장단가제도로 개편해 대상을 300억원 미만 공사로 하향했고, 운영주체도 국토교통부 산하로 옮겨 발주처와 건설업체가 동수로 참여하는 길을 터 준 것을 골자로 하는 임시 방편안을 확정했다. 품셈을 현실화시키는 안이나 단가 혹은 품셈을 운영하는 제3섹터는 포함시키지 못했다.

국내에서 이해하고 있는 실적단가나 품셈 모두 국내 공공공사 예정가격 산정에 한정되어 있다. 누구도 정확성이나 논리성은 내놓지 않고 있다. 건설공사의 생산성을 측정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실적단가는 노무비와 재료비가 일식으로 처리된 합성단가다. 이 합성 단가는 국가 간 이동이 불가능하다. 국제시장과 호환성이 없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인당 매출액은 수익률과 전혀 무관한 한국건설만의 잣대다.

글로벌 기업들의 보편적인 생산성은 인당 수익률보다 투입인력 대비 산출량으로 따진다. 투입인력 대비 산출량은 가격 단위가 아닌 투입인력량과 단위가 있는 산출 물량이 기준이다. 국제시장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국가 간 생산성 비교 데이터도 단위가 동일해야 비교가 가능하다. 단가 비교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공공사의 품셈이나 실적 단가 모두 정확성과 논리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건설업체와 발주자 모두에게 함정이 있다. 우선 공내역에 익숙해지면 건설업체는 기술력을 잃어버린다. 기술이 전제되지 않은 입찰단가만으로 공간을 채우는 운찰자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발주자는 공내역을 작성한 책임으로 계약 후 약간의 변동에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작은 물량 변동이나 공법 변경, 그리고 재료 변경에도 계약자가 요청하는 대로 설계변경에 응해야 하는 무한책임을 지게 된다. 반면에 계약자는 설계변경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워지는 이상한 현상이다. 물론 설계변경을 거부하거나 혹은 시간 끌기로 계약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편법에 불과하다.

필자의 견해로는 품셈을 부활시켜야 하는 게 정답이다. 시간과 노력, 투자비가 들더라도 무한대인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반드시 품셈의 기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대통령도 금년도 신년사에서 창조경제를 몇 차례 강조했다. 실적단가는 공법을 시공자가 아닌 발주자가 정하는 방식이다. 비록 설계회사의 도움을 받아 예정가격을 산정한다고 하지만 설계회사가 건설회사는 아니다. 건설업체들에게 시공방법 선택권을 돌려줌으로써 기술을 경쟁하게 만드는 게 해답이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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