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내집 마련을 하면 큰 축하를 받았다. 주변에서는 “축하한다”,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새 집 주인은 거나하게 집들이를 했다. 어느 날 저녁 업무를 마친 뒤 ‘하이타이’에 ‘두루마기 휴지’를 들고 집들이에 참석하는 동료의 행렬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집샀다”는 말에 축하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그보다는 “얼마를 빌렸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으레 1억~2억원은 빌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상환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과거에 내 집 마련이 축복이었던 것은 자기 돈으로 샀기 때문이다. 대출이 있다고는 해도 그리 크지 않았다. 10년, 15년 알뜰살뜰 모은 종잣돈에 약간의 대출금을 얹은 수준이니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또 집값은 대출이자 이상으로 올랐다. 지금은 전세자금부터 대출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대출을 더해 집을 사야 하니 대출금 비중이 아주 커졌다.

지난 설 연휴 때 만난 한 지인도 그랬다. 지난 1월에 결혼 13년 만에 집을 샀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했더니 “그게 내 집이냐. 은행집이지”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3억7000만원 집에 2억5000만원 가량을 빌렸단다. 집 가격의 67%다. 집 가격의 70%까지 빌려주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의 한도만큼 최대한 끌어당긴 셈이다.

문제는 월 이자였다. 원금 빼고 이자만 100만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지난달 처음 이자를 냈는데 이자 내고 나니 돈 쓸 게 없더라”며 “이번 추석 때는 부모님과 애들 세뱃돈 주기도 빠듯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이 가정으로서는 초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가 107만 건에 달했다. 2006년 이후 최대 거래량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된다”며 지난해 최고 치적 중 하나로 내세웠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는 것이 있다. 가계대출 증가다. 그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무시무시하다.

지난해 한해 동안 증가한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의 88.7%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5년 4분기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주택버블이 한창이던 때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8월 완화된 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가 영향을 준 것으로 금융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정부는 이 통계에 대해 “돈을 빌려도 담보가 있으니 대출의 질은 좋다”며 “대출양이 늘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문제는 소비다. 상환액이 많을수록 가계는 쓸 돈이 줄어든다. 그러면 소비를 줄이고, 가계는 심리적으로 빈곤해진다. 행복도도 동시에 떨어진다. “새 집 사고 딱 한 달간 행복하더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가계금융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연간 이자와 상환액은 2012년 596만원에서 지난해 823만원으로 2년 새 38.1%인 227만원이나 늘어났다.

집 담보대출은 한 해 두 해 갚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 우려스럽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30년까지 장기로 갚아야 한다. 소비 위축이 한두 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항상 돈 걱정을 하고 사는데 행복할 리 없다. 그만큼 여유를 잃어 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간다. 그런 사회는 분위기도 팍팍해진다. ‘과도한 빚을 끼고 집을 산다는 것’은 이래서 무섭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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