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래는 느는데 값은 크게 안 뛰고 있다. 이것이 진정 부동산시장의 ‘정상화’ 아니겠는가.”

최근 만난 국토교통부 공무원은 현재의 주택시장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가 매매로 갈아타고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천장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전셋값에 지친 세입자들이 올 들어 내 집 마련으로 눈을 돌리며 주택 매매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실수요’가 움직이는데 따른 거래 활성화이다.

뭔가 개운치는 않다. ‘미친 전셋값’을 피해 떠밀리듯 집을 사는 사람들을 과연 진정한 실수요층이라 할 수 있을까. 또 실수요층이 움직여 부동산시장이 선순환되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부동산시장이 정상화 중이라는 국토부의 진단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매매로 전환한 ‘실수요층’만 골탕 먹는 꼴이다. 거래는 느는데 집값이 안 오르는 ‘디커플링’ 현상은 주목할 이슈다. 아직 한국에서 집은 유효한 투자의 수단이다. 저금리 시대에 발 빠르게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집은 여전히 소유한 사람에게 돈을 벌어다 줘야 하는 자산 증식의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은 집을 산 뒤 시세차익을 바라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국토부는 거래량 증가에만 손뼉을 치고 있을 뿐 주거의 하향 이동도 간과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매매 회피 대상이었을 연립주택(빌라)이나 다세대주택의 거래량 상승률이 아파트보다 가파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돈 때문에 밀려서 빌라나 다세대를 매입했는데 나중에 가격이 하락하면 아파트에 비해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며 “현재 가계에서 전셋값이건 주택이건 간에 집이 유일한 자산인데 국민이 위험한 투자로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현상은 정부가 박수칠 일이 결코 아니다”고 질타했다. 

전세 난민의 ‘엑소더스’도 불안하다. 최근 서울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는 또 더 먼 곳으로 돈에 맞춰 집을 구해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토부 자료에서 보면 올해 1~2월 사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 안성시의 주택 매매 증가율이 급증했다. 구리시와 남양주시는 서울에서, 안성시는 경기 용인시에서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옮겨간 사람들이 거래량을 늘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표는 좋아 보여도 모든 여건은 오히려 어려운 때다. 마침 이런 때 국토부 장관이 새로 취임한다. 박근혜정부 들어 두 번째 국토부 장관이다. 유일호 장관 후보자가 정치인 출신답게 부디 시장과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

다행히 유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월세난은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직격탄이다. 시급히 좋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친 전셋값을 잡고, 그래서 이로 인한 ‘반강제적’ 매매 전환 수요를 없앨 복안을 준비 중인가 보다.

전월세 대책은 전임 장관이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한 분야다. 전세 대책이 나오면 전세금이 오르는 역효과가 반복됐다.

유 장관에게도 못 미더운 구석이 하나 있긴 하다. 유 장관은 현직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열 달 뒤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 총선을 겨냥한 실적내기용 대책이 남발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들이 열 달 뒤 기우로 판명되면 좋겠다. 정도(正道)를 걷는 유 장관을 기대한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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