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진솔하고 단호했다. 의견을 경청하고 확실히 이해한 후에 내놓는 답변은 질문자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오랜 경력으로 인해 발주기관이나 원도급자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시장의 균형추 역할인 공정거래위원장으로는 제격이라는 신뢰감을 듬뿍 주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대한전문건설협회를 방문해 심상조 회장 직무대행 등과 가진 ‘전문건설업계 간담회’에서 준 인상은 그야말로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인상뿐만 아니라 전문건설업계의 애로사항에 대한 진지한 해결노력 태도 역시 만점을 줘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제도와 법 개정이 많이 됐지만 하도급을 받는 여러분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듣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불공정 행위로 피해를 당해) 억울해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뒷받침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또는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 말대로 전문건설업계는 발주기관이나 원도급업체로부터 하도급 불공정행위를 당해도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래관계에 대한 보복이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전문건설업계의 처지를 공정거래위원장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만 봐도 부당한 공사비 감액, 공사원금 및 증액분 미지급, 과도한 하자책임 전가 등등 원도급자의 불공정행위는 수 없이 자행되고 있다. 법과 제도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음성적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 하도급업자를 괴롭히는 갑질 횡포는 여전히 공사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수급사업자 보호를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 국회통과 △하도급대금 적기 지급 및 현금 지급비율 확대 △계약 외 추가공사 지시에 대한 대금지급 의무화 △공공기관 불공정 행위 근절 등 12가지 사항에 대한 해결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오늘 건의 사항에 대해 수급사업자 입장을 고려해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원사업자들의 횡포는 제재만 가지고 해결해선 안 된다”며 “(수급사업자와 같이 가도록) 생각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정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불공정 행위를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시장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정 위원장은 얼마전 “공정위 업무자체가 경제민주화”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발언에 대해 공정위에 25년째 근무하는 정 위원장이 조용한 카리스마를 무기로 요즘 주춤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다시 활성화시켜 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전문건설업계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공정해야 공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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