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
SK건설에 대해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요청권을 발동한 지난 3월12일 즈음 만난 한 건설사 최고경영자가 뱉은 말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로 ‘지금은 담합하면 문 닫는다는 각오로 일하는’ 현재의 건설업계 전체가 매도 당하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또 그 속내는 본인 회사가 다음 수사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착잡함으로 읽혔다. 

춘삼월 때아닌 매서운 사정 바람에 재계가 떨고 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문제로 촉발된 사정 불똥이 이제는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로 흘러간다. 그새 SK건설 새만금 방수제 담합과 경남기업 해외 자원개발 정부 지원금 횡령, 동국제강 분식회계, 중흥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줄줄이 튀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수사가 이 정도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비리 척결을 강조한데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이 본격화할 경우 다른 기업 상당수로 수사가 확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추가 수사 대상이라며 몇몇 기업 실명도 거론된다. T.S. 엘리엇의 시구처럼 올해 4월이 재계 입장에선 ‘가장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한참 열이 오르고 있는 사정 정국을 보면서 몇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 기업 오너의 부패와 잘못된 경영 행태는 뿌리 뽑혀야 마땅하다는 대전제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결코 없다.

하지만 정부와 사정 당국이 큰 그림에서 경제 전반의 분위기도 살피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가뜩이나 장기 경기부진 등으로 위축된 기업활동이 매서운 사정 칼날에 더욱 움츠러들게 해선 안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월 종합 경기 전망치가 97.5로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연속 경기호전 기대 기준치인 100을 넘지 못하다 지난달 103.7로 5개월 만에 높아졌던 게 한 달 만에 다시 고꾸라진 것이다.

특히나 현재는 정부가 디플레이션 조짐에 내수 진작을 위한 임금인상과 투자·채용 확대 등을 재계에 적극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때 시작된 사정 한파는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할 기업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에 그런 경우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집권 3년차 증후군’이라는 세간에 떠도는 말도 정부와 사정 당국은 한 번쯤 새겨 들어야 한다.

때가 때인지라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의 말이 새삼 와 닿았다. 그는 3월30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연 기자간담회에서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정상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까지 위축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형사적인 것 때문에 신경쓰여서 못한다면 문제”라고도 했다. 김 회장이 기자 질문에 “굉장히 민감해서 말(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밝힌 입장이다.

지금이 경제회생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제2의 중동·중남미 붐 조성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등 경제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부패 기업엔 철퇴를 내려야겠지만,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기업에겐 정부가 그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충분히 주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재계에도 한마디 해야겠다. 언제까지 비자금, 횡령 등의 구태를 반복할 셈인가. 헛 생각 말고 직원의 삶을 더 풍요하게 하고 나아가 후손에게 물려줄 나라를 지금보다 부강하게 만드는 일에 골몰하기 바란다. 과거 위대한 기업가 선배들이 그렇게 해서 이만큼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이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