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AIIB 가입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AIIB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댐, 도로, 교량, 철도, 산업단지 등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할 때 유상차관을 해주는 국제개발은행이다.
AIIB의 차관을 받아 SOC를 건설하는 국가들은 AIIB 회원국들에게 건설 우선권을 줄 가능성이 크다. 2014년 말 기준 아시아 건설시장 규모는 약 7300억 달러(약 806조원)에 달한다. 아시아 건설시장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에서 육상과 해상으로 유럽, 아프리카까지 잇는 길) 전략을 발표했다. 전례없는 실크로드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중국이 AIIB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일대일로도 염두에 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중국은 AIIB 외에도 ‘실크로드기금’, 브릭스개발은행(NDB) 등 유사한 인프라 투자 국제금융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AIIB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이 거대시장에 진입조차 못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 국명을 쓰지 못한다”고 했음에도 대만이 AIIB에 창립회원국 신청서를 낸 것도 막강한 실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IIB에 아시아국가는 물론이고 영국, 노르웨이, 이스라엘 심지어 브라질까지 참여하겠다며 신청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IB 유상차관 시장이 중요한 것은 향후 우리 건설사들의 아시아 진출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통상 아시아국가들이 건설사업 공고를 낼 때 현지 실적을 요구하는데 AIIB 물량은 실적을 쌓는 최고의 기회가 된다.
AIIB 물량은 아시아 개도국들의 재정사업이나 민간사업 참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과거 일본도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해 이런 식으로 동남아 건설시장에 진입했다. 개도국에 댐, 상하수도 시설 등을 짓게 되면 관련 기계설비를 수출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유상차관으로 건설된 서울지하철 1호선의 경우 초기 전동차는 모두 일본 히타치사에서 들여왔다.
기존의 국제금융기구가 서구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중국 주도의 국제기구 탄생은 한국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의 최고 지분을 미국과 일본이 쥐면서 한국으로서는 주도권을 쥘 기회가 많지 않았다.
AIIB가 과도하게 중국 주도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창립회원국이 50여 개국을 넘어서면서 중국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참여국 중 경제력 순위로 5위권인 우리나라로서는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중국과 기타 국들 간 다리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 예컨대 부총재직을 얻거나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유상차관의 67%를 아시아 국가에 쏟아부었다. 분야별로도 교통, 에너지, 통신 등 인프라에 52%를 지원했다. 하지만 물량 대결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유상차관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우리로서는 AIIB가 지렛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AIIB는 이제 막 창립회원국 신청을 마감한 단계로 구체적인 조직은 향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우리 정부는 정신 바짝 차리고 논의 테이블에 들어가야 한다. AIIB가입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