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가도 되는거야? 여기는 별 문제 없는데 오히려 한국이 문제라니 참 아이러니하네.”

두바이에 사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가려 하는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니 가도 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정작 여기서는 메르스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도 했다. 며칠 뒤 온 또 하나의 메일에서 그는 “한국 들어가도 이상하게 본다고 하니 그냥 유럽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이러니는 아이러니다. 중동에서 ‘메르스’를 의식해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발원지는 중동인데 창궐하는 곳은 한국이 된 탓이다. 한국은 어느새 메르스 감염 세계 2위국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다. 확산 속도로 보자면 사우디를 따라잡지 못하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16일에도 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별다른 질병이 없던 사람도 죽고, 젊은 환자도 죽고 있다. 4차 감염자도 나왔다. 메르스에 대한 통설이 잇달아 뒤집히고 있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메르스가 끔찍한 것은 한 가정을 파탄낸다는 점이다. 부모님 문병 간 아들이 감염되고, 그 아내가 감염되고 나머지 가족들은 격리된다. 메르스로 사망하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강제 화장된다.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게 우리 정서다. 장례를 치를 수조차 없는, 아니 치르더라도 문상객을 받을 수 없는 이 황망한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가정뿐 아니다. 환자를 이송한 대원들과 진료한 의사와 간호사까지 무차별적으로 감염된다. 심지어 병원이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지의 바이러스’에 많이 노출된 나라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라 해외진출이 잦았다. 50년 전 원양어선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해 독일 광부, 중동건설 등 한국인들은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나갔다. 거기다 한국 왕래가 자유로운 조선족까지 합치면 재외동포는 700만명에 이른다. 한국인구를 5000만명으로 보면 무려 14%가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메르스가 시작된 중동에는 건설사 직원들만 1만3000여명에 이른다. 에볼라가 창궐하는 기니, 시에라리온 등 서부아프라카에는 원양선원들이, 뎅기열이 확산중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수많은 상사직원들과 사업가,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 귀국할 때면 언제든 바이러스나 세균을 갖고 들어올 수 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지의 적에 우리 방역망이 뚫릴 위험은 상존했다.

대비를 안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었다. 문제는 운영이었다. 메르스 사태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력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국가를 뒤흔들 만한 질병을 겪어본 경험이 없었던 질병관리본부는 자신도 모르게 안일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첫 환자에 대해서 “바레인은 메르스 발병국가가 아니라서 메르스일 리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세월호 참사…. 국가를 뒤흔든 대형참사의 이면에는 언제나 ‘안일함’이 있었다. 1990년대 건설업계는 안일함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다른 분야는 건설의 실패를 보고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세월호는 해상사고였고, 메르스는 보건사고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겪어야 철저함의 교훈을 배우게 될까. 그나마 메르스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는 더 큰 ‘안일함’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 두렵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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